우종학의 글과 칼럼

[기고] 유신론적 진화론과 창조과학 (복음과상황 99년 2월호)

별아저씨의집 1999. 2. 1. 18:00
*이글은 1998-1999년 사이에 월간 복음과상황을 통해 제기되었던 창조-진화 논쟁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을 편 장대익씨의 글과 그에 대한 응답으로써 창조과학회의 이은일씨가 쓴 글과 장대익씨의 반론으로 이어진 글에 대해 독자들의 오해를 바로 잡고 토론의 내용을 분명히 하고자 쓴 글입니다. (99년 2월)

유신론적진화론과 창조과학 (복음과상황 99년 2월호)

우종학

한국의 창조과학을재고하는 장대익씨의 글에대한 응답으로서 창조과학회 이은일 씨의 글을 읽고 필자에게가장 먼저들었던 생각은 무엇이 문제인가가뚜렷하지 않다는것이었다. 필자는유신론적진화론자도아니고, 6일창조설을믿는 사람도아니다. 단지두 입장의차이를 좀더명확히 짚고넘어가야 한다는생각으로 이글을 쓴다.

두 세계관: 기독교유신론과 자연주의

우리가 살아가는세상에서 사람들의삶을 전혀다르게 방향지울 수있는 세계관을두 가지말하라고 한다면기독교유신론(christian theism)과 자연주의(naturalism)를 들 수있을 것이다. 기독교유신론은 이세상이 절대자 하나님에 의해서창조되었고 그분에 의해서 다스려지며 한사람 한사람의 인생도 그분에 의하여 주어진 의미 있는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자연주의는 이 모든자연계가 우연히생겨났고 인생들도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계몽주의 시대이후로 서양에서는 전통적 유신론이깨어지고 자연주의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그리고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행해지는 모든 학문의 근간에 이 자연주의가 뿌리깊게 박혀 있다. 즉, 근대과학은 계몽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연주의라는 거대한 세계관의 토대 위에 서 있다고 할 수있다. 악으로 인해 창조의 질서가 무너지고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주로 시인하고 그분의 나라의 회복을 소망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큰 적은 바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며 우주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우연에 두는 자연주의이다.

무신론적 진화론, 유신론적 진화론

그 중에서도 현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을 크게 변화시킨 생물학의 진화이론(evolutionary theory)은, 자연주의의 도구로서, 얼마든지 악용되어질 수 있는 과학분야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자연주의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다른 과학에서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자연주의의 핵심, 즉 인간존재의 기원을 물질과 우연에 두는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무신론적 진화론은 이성으로 무장한 많은 지성인들에게 자연주의를 신봉하게 하는 하나의 디딤돌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신론적 진화론은 자연주의를 선교하는 다른 많은 학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적이다.

그러나 유신론적 진화론은 과학이론(how)으로서 진화이론을, 세계관(why)으로서 기독교 유신론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무신론적 진화론과는 엄연히 다르다. 필자는 여기서, 현상(how)을 이해하려는 시도로서의 과학이론과 그 현상의 근본적 원인(why)을 묻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서의 세계관을 구분하고자 한다. 물론 중립적인 과학이론은 없으며 현상을 이해하려는 모든 과학적 행위와 이론에는 모종의 세계관이 깔려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구분을 진화론에 적용해 보면, 인류의 존재가 어떤 식으로 창조되었는가를 이해하려는 과학이론으로서 진화 메카니즘을, 그리고 그런 진화를 통해 인류가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의 답으로 기독교 유신론을 갖는 것이 유신론적 진화론이다.

반면, 인류가 어떻게 기원하였는가를 밝히려는 과학이론으로 진화론을, 그리고 왜 그러한 진화가 일어났는가의 대답으로 자연주의를 갖는 것이 무신론적 진화론이다. 물론, 진화이론은 세계관적 성격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진화이론 자체를 무신론, 혹은 자연주의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필자는 과학 이론과 세계관을 어느정도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진화론과 같은 민감한 문제를 한국에서 다룰 때는. 예를 들어 의학을 보자. 배가 아파서 맹장을 잘라내야 할 때 의사는 의학이라는 과학이론을 가지고 수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행위에는 자연주의가 깔려 있을 수도, 기독교 유신론이 깔려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창조론과 창조과학

창조론(creationism)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를 다스리신다는 세계관으로 기독교유신론과 같은 세계관이다. 그러나 창조론은 세계관으로서 기독교유신론을 담고 있지만 사실, 구체적 과학이론을 담고 있지는 않다. 반면 진화이론이라는 것은 바탕에 깔린 세계관이 무엇이든 간에 진화 메카니즘을 과학이론으로 갖고 있는 명백한 과학이론이다. 이런의미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립될 수 있는개념이 아니다. 창조론은 세계관적 의미의 개념이고 진화론은 과학이론의 개념이다.

그러나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라고 말할 때는 주로 미국의 창조과학 운동을 통해 이루어져온 활동을 지칭하는데, 창조론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창조론의 입장 중 하나라는 것인데, 창조과학은 세계관으로서 창조론을 갖고 과학이론으로서 구체적인 어떤 이론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진화론과 대립될 수 있는 개념이다. 창조과학회에서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최근까지 '젊은지구설'(young earth theory)을 주장해왔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날-시대 이론, 간격이론, 성년 창조설등의 이론을 제시해왔다. (물론 이러한 이론들도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받기에는 무리가 있다.) 젊은지구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창조과학자들의 목소리가 커진 현재에는 진화론에 대응되는 뚜렷한 과학이론을 제시하지 못한 채, 대진화가 과학적이 아니다라는 과학이론으로서의 마지노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자연과학을 하는 연구자로서 볼 때, 창조과학을 과학이론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창조과학회에서 보다 전문적인 연구들을 통하여 과학이론으로자리잡는다고 한다면 무신론적 진화론과 창조과학은 세계관에서나 과학이론에서나 정확하게 반대되는 두입장이 될 것이다.

세계관: 기독교유신론 자연주의

과학이론: 유신론적진화론 젊은지구설 무신론적진화론 (진화론이 아닌)다른이론


요약을 해보면다음과 같다. 기독교 유신론을 대변하는 세계관으로서의 창조론에는 서로 다른과학이론을 갖는 다양한 입장들이 포함될 수 있다. 그 예로서, 젊은지구설, 유신론적 진화론, 그리고 진화론이 아닌 제3의이론을 들 수 있겠다. 무신론을 대변하는 세계관으로서의 자연주의에는 무신론적 진화론, 무신론적이지만 진화론에 반대하는 입장들을 들 수 있겠다.

유신론적 진화론이 안 되는이유

그렇다면 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 일 수 없는이유는 무엇인가? 창조과학회원의 응답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진화론이 과학적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한 문장이었다. 바로 그거다. 창조과학회가 진화론에 반대하는 이유가 성경의 문자적 해석 때문이 아니라 진화이론이 과학적 사실로 입증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것. 이것이 필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접근이라고 느껴졌다. 그렇다. 창조과학회가 창조론에 입각하여 제대로 된 과학이론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세계관을 가지고 얘기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과학이론으로써 진화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매우 실망적이다.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은누가 결정하는가? 과학적 사실이라는것은 일반인들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자사회에서 기나긴 연구와 노력, 그리고 반증과 검증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미에서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과학회의 활동은 매우 실망스럽다. 창조과학회가 과학을 하는 학회라면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과학적으로밝히는 일을 해야한다.

필자는 창조과학회의 활동 전체를 회의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창조과학회가 자연주의 세계관과 맞서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해온 수많은 교육과 강연들은 상당히 고무적인 것이다. 자연주의와 맞서서 싸우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회라는 타이틀을 갖는다면, 선교단체가 아닌 학회로 모이는 모임이라면 더군다나, 과학이 신앙의 적으로 악용되어지는 사회에서 책임을 느끼는 그리스도인과학자들이 모이는 모임이라면, 그렇다면, 과학과 신앙에 대한보다 폭넓은 연구와 진화론이라는 구체적 과학이론에 대한 전문적 연구가 있어야할 것으로본다. 자연주의와 맞서 싸우는 일은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만, 이러한 연구가 없이는 전 우주를 창조하신 위대한 하나님을 인간의 좁은 지식안에 가둔다는 느낌을 필자는 지울 수가 없다.

이렇게 한번 상상해보자. 여기에유신론적 진화론학회가있다고. 그렇다면 창조과학회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입장 모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으며 어떤 방식으로 창조하셨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과학이론으로서 서로 다른이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은 과학적 사실로서 어느 이론이 더 맞는지를 밝히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는 의미에서 경쟁자일 수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적 진화론자들과 그리고 진화론을 비판하고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역시 하나님을 부정하는 비진화론자들이 세상에 미치는 막대한 자연주의적 영향력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두 학회는동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