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독서모임

[독서모임] 네가지 사랑 - 루이스: 2장. 인간 이하 것에 대한 애호와 사랑

별아저씨의집 2008. 10. 13. 07:03
2장. 인간 이하 것에 대한 애호와 사랑

루이스는 본격적으로 인간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에 대해 논하기 전에 2장에서 인간 이하의 것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 다룬다. 그것은 사랑한다기 보다는 좋아한다고도 표현할 수도 있겠다.

우선 그는 두 가지 즐거움을 구분한다. 하나는 목이 마를때 물을 마시는 즐거움처럼 필요가 채워질 때 맛보는 즐거움이다. (필요의 즐거움 need-pleasure). 다른 하나는 산책을 하나가 콩밭의 향기를 맡거나 아카시아 꽃 내음을 맡을 때 오는 즐거움으로 그 대상에 대한 감상에서 오는 즐거움이다 (감상의 즐거움 pleasure of appreciation). 필요의 즐거움은 욕구가 채워짐으로써 생겨나는데 그래서 1장에서 다룬 필요의 사랑과 관련된다. 반면 감상의 즐거움은 어떤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대상 자체의 존재가 주는 즐거움이다. 예를 들어, 어쩌면 다시는 못볼지도 모르는 숲이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감상의 즐거움에는 사심이 없다.

이렇게 감상의 즐거움을 주는 대상에 대한 사랑을 감상의 사랑(appreciative love)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1장에서 다룬 두가지 종류의 사랑에 하나가 첨가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예로 들면 우리의 가난함에 대해 부르짖는 것은 필요의 사랑이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고난도 감수하는 것은 선물의 사랑이며, 그분의 영광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은 감상의 사랑이다. 

(사실, 이 감상의 즐거움은 루이스가 직접 표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존재, 혹은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질서있음, 영광 등과 같은 것으로 신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하나의 표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필요의 사랑을 넘어서 이렇게 하나님 그분에 대한 감상의 사랑으로 채워질때 더 위대해 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을 루이스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내 해석이다).

루이스는 비인격적인 대상에 대한 사랑의 예로 두가지를 든다. 하나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애국심이다.
우선, 자연에 대한 사랑을 논하면서 그는 자연을 감상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지만 자연을 완벽한 스승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약간 논의에서 빗나가는 듯이 보이는 이 부분은 당시 시대사조에 대한 루이스의 비판이 들어있다고 볼수 있겠다. 여기서는 자연신학의 한계를 지적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만 기독교의 진리들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창조자의 영광을 알려주는 힌트들을 담고 있을 뿐이다.

두번째로 그는 애국심을 여러가지 얼굴로 다룬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전투적이 되는 애국심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기 나라의 과거에 대해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조국은 위대했다라는 식의) 잘못된 감정이나 신념을 갖는 것은 어그러진 애국심이다. 더 나아가 그 애국심이 악마적이 되어 자기를 부정하는 단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애국심에 해당되는 분석은 가정, 교회, 학교 등 어떤 조직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생각할 문제

1. 루이스는 2장에서 감상의 사랑을 추가하는데 이 세 가지 사랑 (필요, 선물, 감상의 사랑)을 부부관계에 대해 그리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적용해 보자.

2. 2장에서 루이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 약간 뭍어나온다. 우리가 얼만큼 자연에 대한 사랑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그리고 자연에 대한 감상의 사랑에서 창조주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가에 대해 논해 보자.

3. 애국심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집단이기주의와 애국심은 어떻게 다른가? 월드컵 게임을 생각해 보자. 우리교회에 대한 사랑, 우리 가정에 대한 사랑, 우리 학교에 대한 사랑 등은 어떤 면에서 위험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