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라이덴에서 맞는 주일

별아저씨의집 2017. 11. 11. 21:22
라이덴에서 맞는 주일,
시차때문에 일찍 깬 이른 새벽부터 블랙홀 논문들을 읽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천문학, 그중에서도 몰랐던 사실들이 빠르게 밝혀지는 이 분야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자 흥미로운 무대입니다.

몇년만 논문을 읽지 않으면 뒤쳐지기 쉬운 분야에서 논문들을 읽을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박사과정 시절엔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논문들을 읽으며 모르는 내용들은 참고문헌을 죄다 뒤져가며 공부하고 그렇게 연구결과들을 섭렵하면서 한 주제를 점점 꿰둟어 보는 내공을 쌓아갔는데, 커리어가 흘러가면서 매니저같은 일이 점점 많아지니 그 시절의 그런 호사를 누릴 기회는 많지 않다고 변명하면서도 쌓아둔 논문들을 뒤늦게 읽으면서 참 부끄럽습니다.

대부분 작년 하반기에서 올해 나온 논문들인데 그사이 논란되던 관측결과들엔 더 나은 데이타나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새로운 해석이 내려지고 보다 선명하게 블랙홀과 은하의 진화관계를 드러냅니다.

블랙홀이 변하는 시간은 백만년으로 매우 짧은데 비해 은하에서 별생성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1억년으로 매우 깁니다. 그래서 이 둘 사이의 관련성을 관측적으로 찾아내는 일이 무척 어렵습니다. 내일부터 한주간 다뤄질 주제이기도 합니다.

광대한 시간의 과정을 통해 거시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밝혀내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어디선가 웃고 계실 당신은 어려운 산수문제를 숙제로 내준 선생님처럼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예배당 안에만 갇혀있지 않는 당신은 오늘 여기 라이덴에서 만나는 은하의 세계에도 거합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하느냐. 예수를 만난 제자들의 대답은 그들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오듯, 오늘 우리는 따듯한 햇살과 속살거리는 바람과 잔잔한 호수와 길가에 자라는 풀과 나무와 맑고 짙은 하늘과 그리고 하늘너머 보이지 않는 우주를 경험하며 당신을 창조자라 부릅니다.

기억하는 지난 40여년의 시간동안 주일에 예배당에 가지 않은 일이 손에 꼽혀서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살짝 불편하기도 하지만 당신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오늘은 쉼을 구합니다.

아침을 먹으러 간 식당에 가득찬 사람들은 이탈리아나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별반 다름없이 그 삶의 색깔과 향기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있습니다.

가끔씩, 꼭 지리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먼 세상, 다른 세계관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그들의 삶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소비가 주는 행복, 허망하지만 주어진 짧은 인생의 시간에 대한 효과적 누림, 추억으로나 가끔 남을 사람들의 사랑, 대제국을 건설하거나 큰회사를 차리는 일, 안락한 노후...

예배당에 있을 때도 종종 당신이 그립습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쏟아지는 설교를 들을 때에도, 박수와 함께 열정적인 찬양이 드려질 때도, 나는 종종 당신이 다른 곳에 있을거란 생각에 당신을 더 그립니다.

어쩌다 나지막하게 터져나오는 방언은 그 그리움, 당신의 임재에 대한 갈망일거라 추측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소리가 그리움을 줄여주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이 땅에서 나의 심장박동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만든 불만, 내가 만든 미움, 내가 만든 악의 구조를 당신에게 책임돌리는 무지와 뻔뻔함을 넘어, 그리움에 지치고 고군분투하다가 가는 인생이라도 그 여정을 깊이 사랑할 수 있기를.

당신의 카이로스를 기다리며, 오늘, 이 시간의 의미를 잠시 묻습니다.


201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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