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대가와의 대화

별아저씨의집 2008. 10. 2. 20:29
더위에 잠이 깨다.
산타 바바라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던 더위가 10월을 무색하게 한다.

오늘 과에서 첫번째 콜로퀴움이 있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 (Max-Plank Institute for Astronomy)의 디렉터인 한스-월터 릭스가 강연을 했다. UCLA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이라 30분짜리 약속을 잡았다. 강연 내용은 내 연구분야와는 동떨어진 분야라 그리 흥미진진하진 않았지만 천문학 분야의 주요 문제 중의 하나를 다루고 있었다. 대가답게 휼륭한 강연이었다. 대가들은 보통 말을 천천히 하는 경향이 있는데, 또박또박 상당히 엘레강트한 톡이었다.

톡이 끝나고 내 방으로 온 한스-월터와 얘기를 하다보니 1시간이 넘어버렸다. 내가 연구한 주요 결과를 보여주면서 얘기가 시작되었는데 디스커션을 하다보니 내가 학생 때 연구하던 것 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했고 현재 하고 있는 연구 주제들이 차례로 끄집혀 나왔다. 그는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을 던지고 내가 방어하는 내용들을 들으며 다시 정곡을 찌르는 내용을 꺼내든다.

내 연구와 관련된 연구들을 섭렵하고 있는 그와 대화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대가답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뿐만 아니라, 현재 천문학계의 커다란 숙제들을 진단하고 앞으로 가야할 방향들을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제시하고 밀고나가는 것이 큰 연구소의 디렉터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흐름 속에서 자신이 하는 사이언스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한 시간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다음 단계에 해야할 어렴풋하던 연구주제들을 좀더 분명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구체적인 것들은 더 깊은 생각과 준비를 필요로 하지만 무엇이 핵심 이슈인지를 정확히 보게 되는 것은 대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는 가장 귀중한 소득이다.

잠이 깬 머리 속에 연구주제들이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