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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론의 송아지를 추천하며 - 창조과학 괴담의 전성기는 끝났다.

별아저씨의집 2017. 1. 20. 21:41

창조과학 괴담의 전성기는 끝났다.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교회지체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조언을 구해왔습니다.


"............저희 교회 신자 중 한 분이 최근 지구평면설에 깊이 빠지신 것 같습니다. 숨겨진 사실을 알리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위에 그것과 관련한 얘기를 많이 하십니다.

같은 교인으로 어떻게 돕고 바라봐야 할지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해 보이고 좀 더 크게 생각해서 자칫 잘못하면 교회에 분란과 혼란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세히는 아니더라도 개략적인 안내나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떤 경로인지 모르지만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게 된 그 분은 깨달음의 강도가 커서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걸 사명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난감했습니다. 지구가 둥글지 않고 편평하다고 믿는 분의 주장을 하나하나 들어보고 무엇이 잘못인지 반박해줄 필요도 있겠지만 지동설-천동설 논쟁도 아니고 창조과학도 아니고 지구평면설에 대한 믿음을 어디서 부터 깨주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주장을 들으면 입이 딱 벌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구가 평면이 아니라 둥글다는 수많은 증거가 있지만 그런 증거들을 얘기해도 지구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을 설득하기는 어렵습니다.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갖는 대화불가능성입니다.

21세기에도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왠만한 사람들은 무척 황당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지구가 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젊은지구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도 똑같이 황당합니다. 오히려 젊은지구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황당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놀랍죠.

교회를 중심으로 창조과학이 퍼진 것은 80년대 부터입니다. 창조과학은 과학적 근거도 없고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보며 세대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갖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교회를 휘어잡았습니다.

창조과학은 수많은 괴담을 양산했습니다. 가령 이런 것들이죠.
1.사람과 공룡의 발자국이 함께 찍힌 증거가 있다.
2 진화생물학자들이 모인 시카고 학회에서 진화론이 틀렸다고 결론 내렸다.
3 인류의 조상 이브를 찾았다.
4.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법으로 오래된 암석의 나이를 측정하면 나이가 짧게 나온다.
5. 저명한 고생물학자가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을 믿을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6. 하늘 위에는 실제로 물층이 있었고 노아홍수때 사용되었다.
7. 빅뱅에 대한 증거가 없다.
8. 그랜드캐년은 노아 홍수때 만들어졌다.

이런 주장들이 교인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면서 교인들은 이런 괴담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듯한 논리들과 과학적 증거를 결합한 이런 괴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창조설자들이 참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창조과학 괴담에 대해 반박해 보라거나 혹은 반박해 주세요 하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런 괴담에 별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대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평면설에 대해 과학자들이 그냥 웃어 넘기듯이 젊은지구 창조론도 그냥 웃어 넘길 뿐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괴담들을 상대해 주는 것 자체가 그 괴담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됩니다. 만일 제가 TV토론에 나가서 지구평면설을 주장하는 사람과 토론을 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저는 지구가 둥근 이유를 과학적으로 주욱 설명하겠지만 반대로 지구평면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제 설명을 반박하면서 그래도 여전히 지구가 평면인 이유를 설명할 것입니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별로 득이 안되는 토론이 되겠지요.

바로 그래서입니다. 창조과학자들과 과학자들의 토론이 거의 없는 이유는 젊은지구론은 과학자들이 토론할 만한 깜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는 토론할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래도 괴담이 계속 퍼져나가면 누군가는 괴담을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아모리족속과 전쟁할 때 해와 달이 멈췄다는 증거를 나사가 찾았다는 괴담은 제가 낸시랭의 신학펀치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만 창조과학 괴담을 일일이 상대하는 건 저의 우선순위는 아닙니다.

그런데 드디어 창조과학의 괴담을 허무는 책이 나왔습니다. 그 괴담의 실체를 조목조목 밝혀주는 필독서가 되겠습니다.

임택규의 '아론의 송아지'의 부제는 '젊은지구론에 대한 합리적 비판'입니다. 어제 밤에 이 책을 일독하면서 저는 이 책의 제목을 '창조과학 괴담 깨기'로 붙여보았습니다.

책의 2/3을 차지하는 2부에는 20개의 꼭지가 나옵니다. 각 꼭지마다 유행하는 창조과학의 핵심 괴담을 하나씩 다룹니다. 그리고 그 괴담이 나온 배경, 그 괴담의 내용, 그 괴담에서 사용하는 과학적 근거들, 그 괴담이 사용한 과학적 증거의 편집과 왜곡 그리고 논리적 문제점들, 그 괴담과 달리 실제로 과학적 증거는 어떤 내용을 보여주는지, 그리고 그 괴담을 보는 신앙인의 안타까움, 괴담대신 어떻게 그 문제를 신앙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등등이 다뤄집니다.

매번 인터넷/오프라인 논쟁에서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거 하나하나가 왜 괴담일 수 밖에 없는지 이 책은 속속들이 드러냅니다.

정말 잘 쓴 책입니다. 이분의 대중적 글쓰기가 이렇게 탄탄한 줄 몰랐네요.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고 어려운 내용을 쉽고 간결한 필치로, 그러면서도 위트를 섞어 합리적으로 괴담을 까주는 책입니다.

'무크따'를 통해 과학과 신앙의 숲을 보는 조망을 했다면 '아론의 송아지'를 통해 창조과학 괴담을 하나하나 깨뜨리는 작업을 하시길 권합니다. 그리곤 '오리진'을 통해 구체적인 주제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고민하고 '신의언어'를 통해 진화생물학자의 간증과 신앙고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창조과학 괴담의 전성기는 끝나고 있습니다. 아론의 송아지를 깨뜨리는데 '아론의 송아지'가 참으로 귀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