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무크따_이야기] 15번째 - 창조과학을 증명하려다 진화학자가 되었다구?

별아저씨의집 2016. 9. 3. 11:34
#무크따_이야기 15번째 - 창조과학을 증명하려다 진화학자가 되었다구?

미국 출장 중에 생긴 흥미로운 얘기 하나.

두주 간 7번의 과학과 신앙 강의를 하며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과학전공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제 사역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되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가방 끈이 긴 분들이 모인 작은 세미나실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 분의 얼굴에서 계속 광채가 났습니다. 중세 미술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할로우는 아니었지만 이 분의 표정은 강의 내내 밝고 포근하며 큰 지지를 표명하는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강의 후에 길게 이어진 질문/토론 시간에 본인은 식물진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원으로 소개를 하시더군요. 다른 분들이 질문하는 내용에 전문가답게 답변을 대신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모임을 주최한 분들에게 들어보니 이 분은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된 분이랍니다. 과학이 기독교 신앙에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창조과학식으로 과학을 부정하는 견해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을 통해 창조를 이야기하는 제 강의내용이 도움이 된 것이 아니겠냐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며칠 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분은 어릴때 부터 교회를 다녔고 창조과학 강의에 큰 영향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창조과학을 증명하겠다고 생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여 대학에 갔다는 군요.

많은 생물전공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듯 대학에서 수업듣는 수준에서는 사실 여전히 진화를 부정하고 창조과학식 생각을 붙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다보니 창조과학에서 진화를 반대하는 주장들이 얇팍하고 비과학적인 주장임을 알게되고 큰 혼란이 왔답니다. 그래서 많이 방황했다는군요.

진화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어가는 과정 동안 많은 혼란과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교회에서는 거의 자신의 전공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초신자처럼 보였겠습니다.

평소에 말이 없던 분이 그 다음날 교회에서 활기차게 과학과 신앙 이야기를 하면서 어제 강의 내용 대부분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한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답니다.

창조과학을 하겠다고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가 대학원에서 진화학을 공부하면서 진화학자가 된 이 분은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듯 이단적 사상을 가진 겉으로만 그리스도인인 척 하는 무신론자일까요? 혹은 성경을 믿지 않으며 그리스도인 코스푸레를 하는 진화론자일까요?

아닙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알지 못하지만 학창시절 창조과학 강의를 감명깊게 듣고 창조과학자가 되겠다고 결단한 그 믿음 만큼은 참 귀합니다. 그 믿음 때문에 대학과 대학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진화에 관련된 창조과학의 잘못된 주장들을 깨닫는 과정은 얼마나 큰 충격과 고통과 방황을 주었을까요?

그리고 진화학자가 되어 실험하고 연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그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신앙은 어떻게 이해되고 정리된 것일까요? 교회에서 나누지도 못하고, 자신의 전공지식과 신앙을 함께 유지하기 위해 걸었던 그 길은 얼마나 외로운 길어었을까요?

이 분을 보니 넘버서의 '창조론자들'에 나오는 내용이 생각납니다. 젊은지구론자들이 전문가를 키위기 위해 젊은이들을 대학원에 보냈는데 과학을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갖게된 이들은 죄다 창조과학을 버리고 젊은지구론을 버리게 되었다는 우스운 역사 말이죠.

참 감사한 일입니다. 이 분이 진화학을 연구하면서 창조과학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게 된 이후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참 다행입니다. 엄밀한 과학연구를 하는 과학자로 살면서도 창조를 믿는 신앙인의 길을 조용히 걸어왔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면 또 어떤 공격이 있을지 모르지요. 진화론자라는 비난과 마녀사냥식 공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분이 학자로서 진화학을 연구하며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묵묵히 주어진 과학자의 삶을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남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