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우종학 교수의 별 아저씨 이야기] 자연 對 창조

별아저씨의집 2015. 5. 23. 10:02

갑자기 홍수가 나서 고립된 어느 신자가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기도 후 신이 구해주실 거라고 확신하게 된 그는 마음이 평안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판자조각으로 만든 뗏목을 타고 가던 사람들이 구해주겠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신이 자신을 구해줄 거라며 도움의 손길을 거부했다.  
 
얼마 후 모터보트를 탄 구조대가 다가왔다. 보트에 옮겨타라고 권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신이 구원해줄 것이라고. 한참 뒤, 이번에는 구조헬기가 다가왔다. 사다리줄을 내려주었지만 그는 이번에도 거절했다. 결국 그는 물에 쓸려가 죽고 말았다. 

천국에 간 그는 하나님께 물었다. 왜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그는 이런 대답을 들었다. 3번이나 구원의 손길을 보냈는데 왜 거부했느냐고. 신이 구원해주리라 확신했을 때 그는 도대체 어떤 방법을 상상한 걸까? 순식간에 공간이동을 해서 안전한 곳에 옮겨져 있으리라 기대한 걸까? 

과학은 자연을 다룬다. 자연은 사람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저절로 일어나는 일을 뜻한다. 인위적이지 않은 것이 자연이지만 과학으로 설명되는 자연현상은 왠지 신을 배제하는 듯하다.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라는 개념이 창조와 양립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진화는 생명체가 ‘스스로’ 변화된다는, 혹은 종이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개념이기에 창조에 위배된단다. 과연 그럴까?  

기독교인들은 종종 과학으로 설명될 수 없는 초자연적 영역으로 하나님의 창조방법을 제한한다. 소위 특별 창조론으로 불리는 매우 좁은 창조관이다. 반대로 인과관계를 통해 자연적 설명이 가능하면 신의 창조가 아니라고 오해한다. 홍수에 고립된 신자를 다시 생각해보자. 왜 신의 역사를 기적이라는 영역에 가두는가? 인과관계 설명이 가능한 자연적 방법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면 안 된다는 편견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걸까.

오늘날 신은 어떻게 우주를 다스리고 섭리할까? 어떤 방법으로 생명을 창조할까?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착상이 되어 세포분열을 하면서 점점 생명이 창조된다. 단세포에서 인간으로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과학은 자연적 과정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설명은 신이 생명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과학은 그저 수정과 착상, 세포분열과 유전 등 인과관계를 설명할 뿐이다. 하지만 창조주를 믿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과학은 하나님이 생명을 창조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세세히 알려주는 셈이다. 과학으로 이해하게 된 그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은 새생명을 탄생시키고 태양계를 운행하고 우주 전체를 섭리한다. 

만일 ‘자연적’이라는 이유로 생물 진화나 우주 진화가 창조개념과 반대된다는 창조과학의 주장이 옳다면 어떨까? 과학으로 설명되는 생명 탄생 과정이나 스스로 행성들이 움직이는 듯한 태양계의 운동도, 심지어 눈비가 내리는 기상 현상도 모두 하나님의 창조가 아니게 되어 버린다. 자연적 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하나님을 배제한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은 아직 과학이 풀지 못한 영역에만 남아있는 틈새의 신(God of the gaps)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창조 방법을 제한하는 건 옳을까? 창조의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지 거꾸로 우리 생각대로 하나님을 규제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제한하는 창조과학은 그래서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하나님이 쓰신 자연이라는 책에는 창조의 방법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과학은 자연을 읽어가는 영원한 근사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과학을 통해 많은 것을 알려주신다. 우주와 지구와 생물이 모두 특별한 방법으로 마술처럼 창조되었다고 보는 창조과학자들은, 자연적 과정을 통한 창조를 탐구하는 기독교인 과학자들을 하나님의 창조까지도 부정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특별창조만을 고집하는 창조과학자들이 우주 진화나 생물 진화처럼 자연을 통한 창조는 아예 창조로 인정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창조 방법에 대한 의견차이는 왜 생길까? 첫째, 자연을 통한 창조를 거부하고 특별창조만을 고집하는 창조과학의 신학적 문제 때문이다. 둘째, 과학계에서 합의되고 정설이 된 내용을 수용하는가 거부하는가의 차이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과학으로 설명되는 태양계의 운동이나 생명의 탄생 과정은 오히려 창조의 지혜를 알려준다. 자연은 창조주의 작품이며 창조의 과정과 방법을 낱낱이 드러내는 놀라운 계시이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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