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우종학 교수의 별 아저씨 이야기] 진화는 진화주의와 다르다

별아저씨의집 2015. 5. 9. 10:00


국민일보 2015.05.09


기독교인들은 진화라는 개념을 불편해 한다. 종북이나 공산주의라는 말처럼 진화라는 단어에는 빨간 딱지가 붙어 있다. 진화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반기독교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그들은 신이 진화라는 방법으로 우주를 창조했다는 시나리오 자체를 어불성설이라 생각한다. 마치 착한 공산주의가 말이 되지 않듯이. 
 
진화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과학자들은 주로 자연현상과 관련해서 진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반면, 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신론과 연결해서 철학적 의미로 진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진화를 정의하는 일부터 논쟁이 시작되기도 한다. 오해와 편견을 풀려면 기독교인들은 진화와 진화이론, 그리고 진화주의를 구별해야 한다.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진화라는 개념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단순한 변화보다는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뜻한다. 


가령, 균일했던 초기 우주가 역동적인 현재 우주로 바뀌는 과정을 우주진화라고 하고, 빛을 내기 시작한 별이 크기와 온도가 변하면서 결국 백색왜성이나 초신성으로 일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별의 진화라고 한다. 세대에 걸쳐 유전자 풀이 증가하고 종의 분화가 일어나는 과정은 생물진화라고 부른다. 시간에 따른 변화를 뜻하는 진화는 자연현상이며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관측되는 과학의 탐구대상이다. 

과학자들이 진화론이라는 말을 쓸 때는 진화이론 혹은 진화과학이라는 의미다. 진화이론은 진화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설명하는 하나의 설명체계를 의미한다. 진화의 원인이나 인과관계를 찾아 설명하는 과학이라는 말이다. 별의 진화이론은 태양 같은 별이 100억년의 시간 후에 어떻게 크기가 수백 배로 커져서 적색거성이 되는지 설명해 준다. 생물진화이론은 유전자 풀이 어떻게 증가하고 생물 종이 어떻게 분화되는지를 설명한다.  


진화라는 자연현상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진화주의라는 말은 진화에 대한 하나의 철학적 관점이다. 흔히 무신론적 진화론이라고 불리는 진화주의는 진화현상을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해석한다. 가령, 진화가 진화이론으로 잘 설명되니까 더 이상 신은 필요 없다는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반면 유신론적 입장의 해석도 가능하다. 진화는 하나님이 다양한 생물의 종을 창조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진화이론은 그 창조의 방법을 밝힌 것이라고 보는 미국의 생물학자 프랜시스 콜린스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이런 견해는 유신론의 관점에서 진화를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이라 불리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선, 진화라는 자연현상을 거부하는 입장은 설득력이 없다. 하나님의 창조 과정은 자연이라는 책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100억년 이상의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우주 진화나, 46억년의 지구역사 동안 화석과 유전자의 기록에 담긴 생물진화는 다름 아닌 창조주의 창조과정을 보여준다. 일반계시로 주어진 자연이라는 책을 거부한다면 창조주의 창조역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진화이론은 어떨까? 반진화주의자들은 흔히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 진화생물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우주진화를 부정하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봐도 천문학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진화이론이 과연 진화현상을 잘 설명하는지, 탄탄한 과학적 증거들에 기초하는지, 얼마나 엄밀한 설명체계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과학자의 몫이다.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 전문성을 가진 과학자들이 판단해야 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 과학자도 아닌 창조과학 지지자들의 일방적 주장만 듣는 일은 심각한 정보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설교시간이나 주일학교에서 진화이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가르친다면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해당 분야 과학자들에게 매우 무례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진화주의는 어떨까? 물론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진화주의는 수용할 수 없다. 진화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며 설득력도 떨어진다. 태양계에서 관측되는 행성들의 운동을 중력이론이라는 과학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무신론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진화도 마찬가지다. 진화와 진화이론을 수용한다고 해서 무신론자가 되지는 않는다.  

진화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진화주의는 창조주를 부정하지만 진화는 오히려 창조의 놀라움을 알려준다. 과학을 통해 진화에 담긴 창조주의 지혜를 밝혀낸다면 그만큼 창조주의 위대함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