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5.4.25
[우종학 교수의 별아저씨 이야기] 치열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따뜻한 햇살과 꽃내음에 어우러진 봄바람을 느끼듯 유쾌하고 신나는 하루하루가 우리 삶을 가득 채우길 원한다. 하지만 소소한 행복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잠시, 우리 눈에는 곧 치열한 삶의 단면들이 들어온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봉합되지 않는 상처와 아픔으로 많은 국민들이 슬퍼하고 있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면 웃을 틈이 없을 듯하다. ‘나라가 이 꼴인데 무슨 연애’라고 읊조렸던 어느 아나운서의 말처럼 봄날의 유쾌함을 느끼는 일 자체가 왠지 죄스럽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이제 그만 잊자고 말하는 이유가.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유쾌한 삶을 살고 싶다. 상처와 아픔은 그만 잊고 싶다. 어둡고 슬픈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신나는 얘기로 삶의 색깔을 바꾸고도 싶다. 그래 잊자. 제발 잊어버리자.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는 자들이 옆에 있는 한 결코 아픔을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가보다, 끊임없이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는. ‘눈감고 귀 닫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 땅의 다양한 부조리를 인식하는 만큼 우리 삶은 치열해진다. 눈 감고 귀 막은 사람들이라면 치열함 대신 유쾌함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고난의 길을 걸어간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두말할 것도 없다.
치열한 삶의 이야기가 도처에서 들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혀 달라는 요구가 처절한 만큼 그들의 삶도 치열해졌다. 우는 자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시간과 돈을 들여 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 반대편에는 세월호 이야기가 지긋지긋하다거나 유족들이 너무한다는, 들으면 얼굴이 화들짝 붉어지는 말을 던지는 사람들로부터, 세월호의 아픔은 공감하지만 끝없이 채증 카메라를 들이대는 감시사회에서 자기검열의 늪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중의 시선이나 바리새인 같은 내면의 가식 때문에 노란 리본조차 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 심하게는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할 수 있다는 반윤리적 논리로, 경제와 시장을 운운하며 부끄러운 다수의 이기심을 들이미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이 사회가 서글프고 내 삶이 부끄럽다.
세월호는 분명히 과학의 주제다. 과학은 어떤 현상의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이니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수많은 생명이 안전할 듯한 거대한 배 안에 갇혀 전 국민의 눈앞에서 수장되었는지. 원인을 모르면 현상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이제라도 세월호 인양이 결정되었으니 아마도 세월호 사건의 원인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 인과관계를 넘어 도덕적 사회적 원인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세월호 관련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 책임을 다하지 못했거나 회피한 사람들, 그리고 사회구조적인 문제까지 철저하게 인과관계를 밝혀야 한다. 그제야 우리는 아마도 서서히 세월호를 잊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한 삶을 살기로 작정한 다른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돈과 권력을 끌어모으기 위해 거짓과 불법을 일삼는 사람들도 무척 치열하다. 세월호 사건을 덮으려는 사람들의 삶은 또 얼마나 치열한가. 위헌 소지를 피하면서 치밀하게 차벽을 쌓는 경찰 지도부의 노력도 치열하다. 대의를 위해서나 혹은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생존을 위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시대 젊은이들의 삶은 또 얼마나 치열한가.
현직 대통령의 측근들이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도 치열한 삶의 단면을 드러낸다. 목숨을 내놓으시겠다던 총리께서는 목숨 대신 총리 자리를 내놓으셨다. 돈을 받았다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을 그만큼 깨끗하다는 뜻으로 이해한 사람도 있었을까? 궁금하다. 총리께선 정말 목숨도 내놓으실까?
지난 이명박정권 실세들에게 포문을 연 것으로 회자되던 자원외교 수사는 어디로 갈까.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를 가릴 것 없이 비리는 죄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의지임에는 틀림없지만 검찰이나 특검 수사가 또 어떤 치열한 삶의 단면들을 드러낼지는 지켜봐야 한다.
치열한 삶을 피할 수 없다면 나는 어느 방향을 선택해야 할까. 이웃을 사랑하고 그 아픔에 동참하는 치열함일까,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치열함일까, 아니면 남을 누르고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한 치열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