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우종학 교수의 별 아저씨 이야기] 약속에 대한 믿음

별아저씨의집 2015. 4. 11. 10:12

국민일보 2015.4.11

[우종학 교수의 별 아저씨 이야기] 약속에 대한 믿음


우리는 흔히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언젠가 나도 괜찮은 직장을 가질 거라고 믿고, 집나간 남편이 꼭 돌아올 거라고 믿고, 이 나라가 점점 더 살기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내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믿음을 누구도 탓할 수는 없다. 믿음은 합리적인 이해나 판단을 근거로 하지는 않는다. 합리성과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 믿음이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희망의 근거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에겐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절망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 극단의 상황에서 불투명한 미래로 한 발짝 내디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어쩌면 인간 존재의 내면에서 질긴 생명력처럼 솟아오르는 막연한 믿음에서 오는 건지도 모른다.  

간절히 믿으면 그대로 실현된다는 주장도 있다. 소위 긍정의 힘이다. 의심하지 않고 철저하게, 온 맘과 힘을 다해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사실 믿음의 대상이다. 하지만 절망의 상황에서 내딛는 믿음의 도약과는 달리 성공과 부를 추구하며 긍정의 힘에 기대는 믿음은 왠지 천박한 상술 같다. 

긍정의 힘이라니 우주에 존재하는 4가지 힘 말고 또 다른 힘이라도 존재한다는 걸까? 부정적 시각이나 태도보다는 긍정적 시각과 태도가 여러모로 유익하겠지만 긍정에 힘을 부여하여 믿음으로 치장하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마치 온 세상에 사용되지 않은 긍정의 기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간절히 바랐던 믿음과는 달리 현실이 우리를 배반하면 우리는 종종 깊은 절망에 빠진다. 몇 번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결코 정규직 직장은 얻을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집나간 남편은 바람난 여자와 새살림을 차리고 나에겐 이혼서류가 날아올 때, 이 나라에서 세월호 같은 사고가 앞으로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바닥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바라기도 하고, 때로는 그 믿음대로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경험하기도 하는 것은 믿음이라는 요소가 담긴 우리 삶의 단편들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이런 종류의 믿음보다는 오히려 삶의 방식, 하나의 도에 가까운 것 같다.  

“도를 아십니까?” 오래된 일이지만 몇 해 만에 한국을 방문한 나를 길에서 반겨준 사람은 복을 타고난 얼굴이라며 말을 걸어온 여자였다. 도대체 어떤 도를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평소 도에 관심이 있던 차라 잠시 길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이어지는 내 질문에 말문이 막힌 그는 잠시 어디로 가자고 했다. 자기보다 고수를 소개해 주겠단다. 물론 대화는 거기서 끝났고 그날 이후로는 길에서 도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그 도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믿는 믿음과는 다른 도였을까?  

기독교가 가르치는 신앙, 즉 예수의 도는 예수가 살아낸 삶의 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그의 길은 세상 사람들이 비웃던 죽음의 길이었지만 결국은 부활의 능력을 드러낸 역설적인 길이었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믿음은 긍정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의심 없이 굳게 믿는 그런 종류의 믿음은 아니다. 새벽에 물 떠놓고 빌면 그 정성이 공력으로 쌓여서 뭔가 효과를 발휘하는 그런 종류의 믿음도 아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철저하게,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사람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의 약속을 믿듯 기독교의 믿음이란 인격적 신뢰를 바탕으로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를 보고 따랐던 제자들이나,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의 약속을 믿고 보이지 않는 길을 나섰던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보여주는 믿음은 결코 합리적인 이해와 논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약속을 받아들이는 믿음은 거꾸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며 우리는 그 믿음을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믿음은 역설이다. 세상을 본받지 말고 구별되는 삶을 살라는 예수의 도를 따르기는 쉽지 않지만 믿음으로 한 발짝 내디디는 그 순간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우리의 이해를 뒤엎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그 경험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가능케 하는 바탕이 되지만 믿음의 도약이라는 첫발을 떼지 않으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의 이야기다.  

우종학 교수(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