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 교수의 별 아저씨 이야기] 과학으로 기적을 증명해야 할까?
최근 한 이슬람 성직자가 전 세계에 큰 웃음을 선사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어느 강연장에서 행성 운동에 관해 질문 받은 그는 지구가 자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만일 비행기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지구가 회전한다면 비행기는 결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니 지구는 자전하지 않고 정지해 있음이 분명하단다.
지구 자전속도는 사실 여객기보다 빠르다. 적도 근처에서는 시속 1700㎞ 정도 되니까 여객기 속도의 두 배다. 여객기가 지구 자전보다 느리면 지구촌 여행은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지구의 모든 물체는 자전에 의한 관성을 받는다. 지구 밖에서 보면 여객기는 자신의 속도에 지구 자전속도를 합한 속도로 날아간다. 관성을 무시한 그 성직자의 주장이 맞다면, 제자리 뛰기를 반복해서 서울서 인천까지 갈 수 있겠다.
수년 전 아랍에미리트 어느 대학에서 블랙홀과 은하 진화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다. 혹시 비슷한 분들이 강연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엉터리 주장이 나온 이유는 과학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코란 때문이기도 하다. 일부 무슬림들은 고대의 상식이 반영된 코란에 기초해서 지동설을 부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코란뿐만 아니라 ‘과학적’ 증거를 사용해서 지동설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 과학적 증거란 바로 매일 해가 동에서 뜨고 서에서 진다는 관측적 사실이다. 천동설(지구중심설)은 말 그대로 철저히 지구중심적인 사고다. 과학에 대한 무지는 이슬람을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기독교는 많이 다를까? 지동설까지는 아니지만 지구의 나이가 1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흔하다. 현대과학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구의 자전을 부정하는 이슬람이나 지구의 오랜 연대를 부정하는 기독교나 오십보백보다. 과학에 무지해서 기독교가 비웃음을 산다면 그것은 복음 때문에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고난일까, 아니면 지적으로 게으른 자기잘못 때문에 생긴 고난일까?
어느 방송에 출연했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의 과학자들이 컴퓨터를 사용해서 연구하다가 지구의 연대 중에 하루가 비어 있음을 밝혀냈다지요?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을 증명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설교와 인터넷에 수없이 인용되고 회자된 이 유명한 이야기는 심지어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성경책에도 실려 있다. “볼티모어 시, 커디스 기계 회사의 우주 관계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의 궤도를 작성하기 위해 태양과 달과 주변 혹성들의 궤도 조사를 하던 중 컴퓨터가 멈추어 버렸다. 원인을 조사해 보니 계산상 하루가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그때 한 사람이 여호수아 10장 12∼14절의 태양이 멈추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과학자들은 그 ‘사라진 하루'를 찾기 위해 컴퓨터 전자계산기를 돌려서 여호수아 시대의 궤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23시간 20분 동안 궤도가 정지했었다는 답을 얻게 되었다.”
1969년에 지역신문 칼럼에 실린 이 일화는 곧 창조과학 소식지에 등장했고 성경의 기적을 증명한 위대한 발견이라며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 일화는 사실이 아니라 허구로 밝혀졌다. 많은 사람들이 조사했지만 이 일화를 입증해 줄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나사는 컴퓨터계산 연구의 사실성을 부정했다. 사실, 컴퓨터 계산으로 사라진 하루를 찾는다는 발상 자체가 대동강물을 팔아먹는 수준이다. 20년이 지난 1989년엔 창조과학 소식지도 이 일화의 허구성을 인정한다.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않았다'는 여호수아 10장의 기록을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이 본문은 여호수아 군대가 아모리 군대를 이길 수 있도록 섭리한 신의 역사를 전한다. 하지만 기적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신앙에 걸림돌이 되기 쉽다. 믿음이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과학적 증명에 기대는 태도가 오히려 불신앙의 방증이다. 신의 역사를 과학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면 그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독자들 중에도 여호수아의 기적을 과학이 증명했다는 이 예화를 설교시간이나 주일학교 수업에 사용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덮어놓고 사용했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무지와 게으름이다.
거짓으로 판명된 지 20년도 넘은 일화를 아직도 교회에서 사용한다는 점은 유감이다. 이 일화가 성경책에 버젓이 실려 있다는 현실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복음을 위해서는 사기 쳐도 괜찮다’는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바로 이렇게 진실을 가리는 무지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닐까?
우종학(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국민일보 2015.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