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 교수의 별 아저씨 이야기] 아름다운 것은 피할 수 없다.
살포시 눈 덮인 관악산 위로 태양이 떠오른다. 아침마다 창밖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이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게 한다. 변함없이 미소를 던져주는 아침 햇살처럼,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시작됐다. 뭔가를 새로 시작할 때면 왠지 모를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끝없이 흘러가는 긴 시간여행의 여기 어디쯤에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앞뒤를 둘러보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리라.
내다보려면 돌아보는 게 우선이겠다. 지난 2014년을 물감으로 칠해 본다면 어떤 색깔이 될까? 많은 사람들이 짙은 회색을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한 해 동안 터진 다양한 사건사고들은 마치 우리 사회가 세월호처럼 침몰하는 듯한 인상을 던져주었다. 정치, 사회, 문화, 종교의 영역을 가릴 것 없이 이 땅 구석구석에 자욱이 내리깔린 짙은 안개가 전방을 내다볼 시야를 가린다. 묵은해처럼 새해도, 아니 앞으로의 세월이 주욱, 그렇게 암울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불현듯 스쳐간다. 2015년 오늘, 과연 우리는 어디서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인류의 역사는 구원의 길을 찾는 긴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행복과 자아실현 같은 개인의 구원에서부터 자유와 평화 그리고 박애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문화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문명을 이룩하고, 인류의 존속과 미래를 담보하는 사회적 구원에 이르기까지 구원을 향한 인간의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고 치열했으리라. 하지만 법과 질서가 세워진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면, 혹은 경제 발전으로 복지를 실현하고 과학기술을 통해서 자구촌의 난제들을 해결하면, 과연 인간은 낙원에 이르게 되는 걸까. 과연 역사는 우리에게 희망찬 미래를 제시하고 있을까. 인간의 지혜와 열정에 희망을 걸어도 괜찮은 걸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도성’으로 존재하는 교회의 모습은 어땠을까. 영광스러워야 할 한국교회의 빛깔이 그리 찬란했던 것 같지는 않다. 목회자들의 성추문과 교회분쟁, 혹세무민했던 12월 전쟁설까지 난무하는 부끄러운 소식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얼굴을 붉혔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교회로 낙인찍힌 그 언제부터인가 기독교는 아니 특히 개신교는 반기독교적 정서를 뿜어내는 사회적 저항에 직면해 있다.
내부사정도 만만치 않다. 헌신적이고 열심이었던 청년들을 비롯해서 점점 더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양희송이 쓴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성도’라는 책을 보면 신앙은 고백하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100만명에 이른단다.
마치 모든 생명이 서서히 죽음을 맞이할 우주의 운명처럼, 우리 사회의 앞날은 어두워 보이고 한국교회의 현실은 부끄럽다.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걸까?
희망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주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드러날 것이라는 약속, 결국 거기에 희망이 담겨 있다. 신앙은 역설이다. 실패와 절망에서 새싹이 나고, 고통과 죽음에서 생명을 낳는다.
창조세계 안에는 소박하지만 강인한 희망의 단초들이 녹아 있다. 꿈틀대는 생명의 몸짓들은 미래를 말하고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도처에서 목격된다. 재롱을 떠는 아기의 천진난만한 표정에 생활고에 시달리던 부모의 마음이 녹아내린다. 자살하러 올라갔을지도 모를 절벽 위에서 마주친 푸른 바다와 섬들의 풍경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 인간이 만든 그 어느 건축물보다 경이로운 신의 작품들이 산과 들과 바다를 메운다. 이 모든 세계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걸까. 이 눈부신 아름다움은 어디서 나타났을까. 존재할 이유가 있었다면 바로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희망의 단초는 우리 안에도 담겨 있다. 양보와 배려를 베푸는 이웃이 살짝 던진 눈웃음이 포근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두 푼을 바친 가난한 과부처럼, 없어도 나누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슬피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아파하는 모습은 바로 인간을 창조한 신의 형상을 드러낸다. 우리가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면, 우리 안에 그 형상이 남아 있다면 인간의 존재 자체가 바로 희망이 아니겠는가.
삶에서 마주치는 아름다움은 외면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다. 희망은 바로 거기에 있다. 더럽고 추함에 비춰 더 빛나는 그 작은 아름다움이 희망을 전한다.
왕이 아니라 종으로 세상에 왔던 그리스도. 막강한 유대왕국의 완성 대신 쓰라린 고통과 비참한 죽음으로 끝났던 그의 삶처럼 희생과 죽음의 절망 안에서, 이기심과 불의의 악취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한다. 그리스도의 삶에서 드러난 역설처럼, 침몰하는 우리 사회의 암울함에서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본다. 삶에서 마주치는 아름다움을 피하지 말자. 불안한 현실 앞에서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하는 희망일지라도, 가슴에 품어 안고 한 걸음씩 내딛는 한 해로 보내자고, 나는 나에게 희망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