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낸시랭의 신학펀치 '외계인은 있나요' 편에 출연했을 때 낸시에게 받았던 돌직구 질문입니다.
"미항공우주국 나사에서 과학자들이 컴퓨터 계산을 하다가 지구 시간에서 24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찾았고 이것이 바로 여호수아서 10장에 나오는 태양과 달이 멈췄던 바로 그 사건을 증명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이에 대한 저의 답변은 그 이야기는 찌라시 수준의 카더라 통신이다 였습니다. 나사에 납품을 하던 한 회사의 직원이 이런 이야기를 지역 신문기자에게 했고 그것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간 것이지만 실제로 이 사람은 나사의 컴퓨터 관련 부서와는 관련도 없고 나사에서 지구 시간에 24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을 찾은 적도 없습니다. 사실 지구의 긴 역사에서 24시간이 비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떤 컴퓨터 계산을 통해서 찾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 허구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나사의 여러 센터 중의 하나인 고다드 센터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검증도 안된 이야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매우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맹신이지 성경이 말하는 종류의 믿음은 아닙니다. 낸시랭의 신학펀치 이후에 그 에피소드를 본 어떤 분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사용하던 성경에도 바로 그 이야기가 사실처럼 나와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페친 한 분이 올려주신 두란노 비젼성경의 사진입니다.
내용을 텍스트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볼티모어 시 커디스 기계 회사의 우주 관계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의 궤도를 작성하기 위해 태양과 달과 주변 혹성들의 궤도 조사를 하던 중 컴퓨터가 멈추어 버렸다. 원인을 조사해 보니 계산상 하루가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그때 한 사람이 여호수아 10장 12-14절의 태양이 멈추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과학자들은 그 '사라진 하루'를 찾기 위해 컴퓨터 전자계산기를 돌려서 여호수아 시대의 궤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23시간 20분 동안 궤도가 정지했었다는 답을 얻게 되었다.
또한 열왕기하 20장 8-11절의 히스기야에 관한 기록은 태양의 궤도가 10도 뒤로 물러갔다고 했는데, 시간으로 계산하면 이것은 40분에 해당된다.
이 둘을 합치면 정확하게 하루가 된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연현상까지도 조절하실 수 있는 분이다. (사 38:78-8)"
위의 해설에 의하면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들과 전쟁을 할 때 태양과 달이 멈춘 시간이 23시간 20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히스기야 왕때 태양이 10도 뒤로 물러간 사건때문에 40분의 시간이 사라졌으니 합쳐서 정확히 24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온 모자라는 24시간이 바로 나사의 과학자들에 의해서 입증되었다는 것이죠. 물론 여호수아서에는 태양이 얼마나 오래 멈추었는지 정확히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않았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마치 제임스 어셔 주교가 창세기 주석을 쓰면서 천지창조가 기원전 4004년에 있었다는 내용을 담았던 그 시절에는 성경 본문과 주석이 잘 구분이 안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원전 4004년에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어셔의 주장을 성경의 권위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큰 것처럼, 성경에 버젓이 나와 있는 나사 이야기를 보면서 여호수아의 기적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판되는 성경은 다양한 종류가 있고 주석성경, 해설성경 등 다양한 주해들이 달려 있는데 이렇게 검증도 되지 않은 이야기를, 아니 오류라고 판정된 이야기를 버젓이 담고 있는 성경들이 있다면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고보니 정말 궁금해집니다. 얼마나 많은 성경이 이런 오류를 담고 있을지.
여러분 중에 혹시 그림과 같이 여호수아 10장의 기적을 나사의 이야기로 풀어낸 해석이 있는 성경을 갖고 있다면 알려주세요. 주욱 리스트를 작성해서 감수를 누가했는지 어떻게 이런 카더라 통신 이야기가 성경에 들어갔는지 따져봐야겠습니다. 사진 찍어 올려주시고 출판사 알려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그럼, 여호수아서 10장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모리 사람들의 군대를 충분히 물리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은 분명하겠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기적을 일으키셨는지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말하거나 혹은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신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의 경우도 정확히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나사에서 성경의 기적을 입증했다는 카더라 통신을 감격하며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그것이 찌라시 수준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될때 어떻게 될까요? 신앙이 좋은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과학의 증명에 무게를 두었던 신앙이 약한 사람들은 여호수아서의 기적 자체를 안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무신론자들에게는 어떨까요? 성경의 기적을 과학으로 입증했다고 나팔을 불었다가 그게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면 오히려 비웃음을 사기 쉽습니다.
목사님들께도 한번 물어봅시다.
이 본문을 설교하실 때 나사의 과학으로 성경의 기적이 입증되었다는 설교를 하신 적들이 있습니까? 없다구요. 그럼 다행입니다. 있다구요.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글을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글로 낙인찍으시겠습니까? 혹은 성경이 (실제로는 두란노 성경에 나온 해설이) 무오하다며 나사의 이야기를 여전히 붙드시겠습니까? 자기가 했던 설교라 하더라도 틀린 내용이 있다면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믿는 것과 그것을 과학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믿음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해설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그 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연현상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분이다" 저는 정확히 이 말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과 그것이 과학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은 다른 이야기 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낸시랭의 신학펀치 시리즈 중에 '외계인은 있나요' 편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링크는 아래에 걸었습니다.
기적과 관련해서 한 가지만 추가하자면,
하나님이 A라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A라는 기적을 행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기적을 행하실지 말지는 하나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안 행하셨다고 해서 기적을 행하실 능력이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닌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