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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플라자] 대학순위 평가의 함정

별아저씨의집 2012. 4. 19. 20:50

매경 사이언스플라자 칼럼 2012년 4월 17일자



[사이언스플라자] 대학순위 평가의 함정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가끔 언론에 등장하는 대학평가에 귀가 솔깃하다. 어느 대학이 세계 100대 대학에 들었는지, 국내 대학 순위는 어떤지를 보여주는 대학순위 평가는 유용한 면이 있다. 그러나 그 폐해도 만만치 않다. 전국 대학총장들은 2010년에 낸 결의문을 통해 언론사의 대학평가가 야기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고 유럽대학연합의 2011년 보고서도 국제 대학순위평가의 여러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미래의 과학자들을 키워낼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훌륭한 과학자는 과학교육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의 교양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학교육을 통해 길러지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대학교육이 대학순위 평가라는 잣대에 너무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어떤 문제들이 있을까? 

첫째, 정량적 평가의 한계다. 대학의 다양한 기능을 획일화된 잣대로 정량적으로 평가하다 보면 대학교육의 질과 분야별 혹은 대학별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가령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경쟁력은 논문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인문학이나 예술 분야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다.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학생들을 인류를 위해 공헌하겠다는 인재들로 변화시킬 수 있는 대학은 뛰어난 대학이다. 그러나 그런 인성교육에 대한 평가는 대학순위 평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둘째, 평가방법의 전문성이나 평가지표의 타당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지적된다. 가령 대학순위 평가지표가 연구실적에 편중되는 바람에 교육을 비롯한 대학의 다양한 기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대학교육의 수혜자인 학생들의 교육만족도와 같은 지표는 왜 없을까? 취업률의 경우도 단기적으로 취업률을 올려서 유리한 점수를 받아내는 사례들이 지적된다. 

셋째, 대학순위 평가가 대학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아 순위를 높이려는 노력이 실제로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학은 국제화 점수를 더 잘 받기 위해 영어로 제공하는 강의 숫자를 늘린다. 그러나 영어 강의 과목이 많이 늘어나 대학순위가 올라간다 한들 한국어 강의에 비해 영어 강의의 교육효과가 떨어진다면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순위는 높아져도 교육의 질은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넷째, 대학 서열화에 따른 학벌주의의 병폐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의 뿌리에는 입시경쟁이 있고 입시경쟁이라는 원죄는 대학의 서열화를 통해 유지 강화된다. 대학순위 평가는 서열화를 조장하고 고착화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언론에 의해 대학순위 평가결과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필요 이상의 권위가 부여된다. 단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인 대학의 순위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한다. 

물론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발표한 2012년 교육역량강화 지원사업의 선정 결과를 보면 97개 대학이 평균 18억원의 지원을 받는다. 막대한 국고를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도 평가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종합순위를 매겨 대학을 서열화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평가항목에 따라 분야별, 전공별로 경쟁력을 제시하고 비교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평가한 몇몇 분야의 점수를 종합해 등수를 매기며 대학의 우열을 가리는 일은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 획일화된 평가기준 대신 대학의 다양한 기능과 특성이 반영될 수 있는 보다 실제적인 평가지표들을 마련해야 한다. 대학은 단순히 순위를 높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교육과 연구 환경이 실제로 향상되도록 대학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