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부활절의 기도

별아저씨의집 2012. 4. 9. 00:25

해마다 부활절의 날씨는 화창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날씨도 봄기운이 감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 전, 아내의 생일날 함께 보았던 '건축학 개론'이란 영화에 나왔던 대학1학년들처럼

사랑에 빠지고픈 그런 봄날입니다.


종교는, 연약한 인간이 신의 도움을 통해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한 하나의 문화현상처럼 생각됩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도 더 잘살기 위해, 더 많이 누리기 위해 끝없이 복을 빕니다.

새벽에도 빌고, 밤을 새면서 빌고, 자녀들 대학보내기 위해 빌고, 개업하면 목사를 모셔놓고 빌고, 

이사가면 새집에서 복받기 위해 빌고, 빌고 또 빕니다.

감사헌금을 하고 십일조를 하면 더 많은 복을 받는다며 부추기는가 하면, 

신에게서 더 받아내려고 하는 속셈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드러냅니다.

참 가관입니다.


오늘 설교에서 부활한 예수의 메세지를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보낸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며 제자들에게 던진 그 메세지는

왕족이 아니라 목수의 아들로, 권력과 부를 가진 집안의 아들이 아니라 노동자의 아들로,

그리고 기적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희생의 길을 걷기 위해서 세상에 보내진 그분의 삶의 담겨 있습니다.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낸다는 얘기는 정확하게 그런 삶을 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너희가 용서하면 하늘에서도 용서할 것이라는 메세지는

고귀한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이 그 은혜에 감격하여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는 일들을 통해

결국 세상사람들이 하나하나 신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비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마구 달리고 있습니다.

사십대의 삶은 하루하루가 뭔가를 만들어 낼 귀중한 시간이고 

땀흘려 열매를 맺어갈 인생의 여름 혹은 초가을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욕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땀들이

더 누리고 더 잘살기 위한 거라면,

복받기 위해 새벽기도하는 노력마냥 그저 이기적 삶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당화는 할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결코 위대할 수 는 없는 

그런 인생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활절,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메세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영원히 부활될 것입니다.


매년 새롭게 피어나는 봄날의 꽃처럼

복받기 위해 바글바글거리는 행태들에 넌더리를 치는 강팍한 내 마음에도 

예수의 삶이 던지는 감동이 부활하여

그의 메세지대로 살고픈 마음이 피어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