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서울대학교 민교협의 성명서

별아저씨의집 2011. 6. 28. 15:47
"최무영의 물리학 강의"라는 책으로 유명한 최무영 교수님이 자연대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오셨는군요.

학생들이 서울대 본관을 점거한 농성을 풀었는데 이에 대한 민교협의 입장을 표명한 성명서입니다.

최무영 선생님이 민교협 멤버이셨군요. 민교협이 전체 교수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중앙전산원이 차단하기도 했나봅니다. 민교협 쪽에서는 본부나 교수협의회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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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농성 해제를 환영하며 법인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다시 요구한다 

법인설립준비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하며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이 28일째인 오늘 농성을 해제한다. 서울대 교수들로서 우리는 학생들의 결정을 무조건 환영하며, 4주에 걸친 긴 기간 동안 아무런 불상사 없이 무사히 농성을 풀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안도할 뿐이다. 

학생들의 총의를 민주적으로 결집하는 모범적인 과정을 통해 시작된 이번 농성은 법인화 추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결여라는 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했다. 아울러 서울대의 문제를 넘어서서 한국 고등교육이 시장만능주의에 굴복하지 않고 공공성 강화를 통해 진정한 발전을 이루어야 할 과제를 우리 국민 모두가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또 서울대학생의 농성은 때마침 전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대학생과 시민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농성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학생들의 진지한 탐구자세, 농성장과 촛불 집회, 록 페스티발 등에서 보여준 건강하고 발랄한 토론과 놀이 문화, 농성장 벽면을 가득 채운 벽보와 온라인에 올려진 작품들에 넘쳐나는 창조력과 비판과 풍자 정신 등 학생들이 농성 과정에서 보여준 진지한 태도와 성숙한 자세는 그들이 우리 대학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끌어갈 힘이자 희망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들의 희생적 노력과 투쟁은 21세기 서울대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서울대학교를 이끌어가는 주역인 1,800여명의 서울대 교수진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국민 앞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 12월에 서울대 법인화 법이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된 이후, 우리는 총학생회, 공무원 노조, 대학노조와 함께 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법인화 추진의 부당함과 졸속함을 바로잡으려고 나름으로 노력해왔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본관 점거 농성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나서야 총장과 본부는 대학 내의 의사수렴에 문제가 있었음을 겨우 인정한 것이다. 

더구나 지난 28일의 농성 기간 중에 서울대학교 교수진이 보여준 모습은 결코 제자들과 국민 앞에 떳떳하거나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농성이 시작된 다음 날부터 본부 측은 학장단 성명, 기획처장 기자회견을 통해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한 최후의 선택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당장 점거 농성을 풀고 사과하지 않는 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마치 상습적인 임금체불을 저지른 악덕 기업주가 파업을 택한 노조를 위협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태도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대학교 교수진을 대표하는 평의원회와 교수협의회의 대응 역시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평의원회는 학생 농성 후에 열린 임시 회의에서 학생들에게는 농성 해제를 요구하면서 본부를 향해서는 더욱 성실한 대화를 주문하는 일견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 지적했듯이 법인화 추진과 관련하여 대학의 최고의결기구인 평의원회는 서울대 교수진과 학생, 직원의 의사를 수렴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학생 농성에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 당사자인 평의원회가 남의 일 말하듯이 내놓은 안이한 입장 표명은 참으로 위선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교수협의회(이하 교협) 역시 우리를 깊이 실망시켰다. 교협은 평의원회와 달리 학칙에 규정된 공식기구가 아닌 임의단체이지만 서울대 교수라면 누구나 가입하는 단체이며, 1960년 4?19혁명으로 처음 탄생하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부활한 소중한 조직이다. 그 점에서 교협은 농성 초기부터 본부 측과 농성 학생 측을 중재할 거의 유일한 기구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우리는 교협 회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중재를 부탁했지만 교협 회장은 그때마다 자신이 나서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교수협의회 정관 11조에 따라 회원 100명의 서명을 받아 임시총회를 요청하기로 결정하고 서명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교협 회장은 임시총회 소집을 위한 회원 서명 작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메일을 6월 17일(금)에 전체 교수에게 보냄으로써 우리를 아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결국 6월 21일(화)에 회원 110명(1명은 소집 요청 후 참여)의 서명으로 임시총회 소집 요청서가 정식 접수되자, 교협은 하는 수 없이 6월 29일(수) 1시 반에 임시총회를 열기로 정하고, 6월 24일(금) 오전에 공고를 내기로 한 후 이를 민교협에도 알려왔다. 그러나 그 전날 학교와 학생 간의 대화를 통해 잠정합의안이 나왔다는 말이 전해지자마자 다시 교협 회장은 임시총회 공고를 중지시키고 말았다. 참으로 부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중앙전산원이 우리 민교협이 서울대 전체 교수진에게 경과 설명을 위한 메일을 보내는 것을 차단하기까지 하여 우리는 정확한 상황과 우리의 입장을 다수 교수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혼선까지 감내해야했다. 

평의원회, 교수협의회는 때로 정해진 규정과 절차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음으로써 서울대학교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기로에서 서울대 전체 교수진의 의사를 오도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며,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학생들의 농성은 마무리되었지만, 법인화라는 사회적 의제에 대한 토론과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법인화는 단지 서울대학교의 미래가 걸린 일이 아니며, 전국의 국공립대학의 미래를 좌우할 문제이고 나아가 한국 고등교육의 장래에 막중한 영향을 끼칠 사안이다. 그것은 결코 지금과 같은 졸속하고 비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실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부산대 총장 당선자가 법인화 포기를 밝히고 경북대 교수들의 총투표에서 87%가 법인화를 반대하는 등, 전국의 국립대학교 교수진들이 법인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서울대 총학생회가 주도한 학생 농성의 성과라 아니할 수 없으며, 학생 농성을 두고 승리라고 말해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대학 발전의 주역다운 주역의 역할을 빼앗기고 자신이 가르치는 어린 제자들의 희생적인 싸움에 편승하는 꼴이 된 우리 교수진의 처지에 대해 뼈저리게 자성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법인화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에 참여한 151명의 동료 교수들, 교협 임시총회 요청에 서명한 110명의 동료 교수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이분들 외에도 뜻을 함께 하는 동료 교수들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법인화의 찬반에 관해 유보적인 입장이거나 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력을 음양으로 지지하고 때로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거듭 밝히지만, 서울대학교 법인화는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회는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오연천 총장을 출석시켜 현안보고를 받아야 하며, 현재 상정된 법인화 폐기 법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또 총장과 본부는 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원회가 요구한 총투표 등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마땅하며, 농성 학생들과 맺은 합의문의 내용을 적극적인 자세로 성실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국립서울대학교의 교수진으로서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법인화 논란에 관한 우리의 책무를 다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 


2011. 6. 26. 

서울대학교 민교협 교수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