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대학은 교육기관이다

별아저씨의집 2011. 4. 11. 03:31
출장을 다녀왔더니 그간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또 한 명의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했다. 자살한 학생의 개인적 문제로 보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너무 크다.

서남표 총장의 카이스트 개혁을 주욱 못마땅하게 봤던 이유는 그가 성공적으로 해낸 일도 있겠지만 한편 그가 대학을 회사처럼 보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흔히, 사회에서는 결과가 중요하지만 대학에서는 그래도 여전히 과정을 중요하게 본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무한경쟁 체제에 내몰린 대학에서는 역시 결과만 중요하다.


나름대로 객관적이라는 대학평가 기준을 만들어 세계의 대학들의 순위를 매기는 일도 우스꽝스럽지만, The TImes 같은 신문사에서 정하는 그 기준들에 목이 메여 질질 끌려가는 대학들도 우습다.

그저 세계 100대 대학, 50대 대학 안에 들기 위해 그 평가기준에 따라 점수를 높이려고 대학들은 안간 힘을 다 쓴다. 사실 연구나 교육 등 실제로 대학의 질과는 큰 상관이 없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숫자 상으로는 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그 우스꽝스런 발상들.

The TImes 지나 다른 평가기관의 발표에서 대학순위의 숫자가 줄어들면 정말 대학의 경쟁력이 강화된 것일까? 글쎄다. 신문에 나는 대학순위는 높아져도 거꾸로 학생들은 피해를 볼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닌가
 
영어수업을 예로 들어보자. 카이스트가 국제학교도 아닌데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영어수업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원 과목들은 모두 영어로 강의한다.

그러나 학부수업을 그것도 다양한 학문을 경험하고 배워야 할 교양과목들을 죄다 영어로 수업을 해야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대학순위 높이기 놀이는 아닌가?

 
대학은 기회를 주는 곳이다.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입학시켰으면 그들에게 꿈을 펼쳐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경제논리와 대학경쟁력이라는 허상에 쫓겨 더이상 학생들을 죽여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