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

하나님은 산신령과 다르다.

별아저씨의집 2004. 10. 1. 01:04
2004년 10월 11일

오늘 설교를 듣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하나님은 산신령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었다. 

성경의 텍스트와는 그리 크게 상관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의 증거구절을 대는 스타일의 '훈화' 설교가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설교는 항상 성경 본문이 던져주는 박진감을 전달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주며, 뭔가 예언자적이기 보다는 너무나 제사장적인, 기존 교회의 권력구조(?)를 옹호하거나, 성속을 확연히 갈라버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이 예배이고 교회봉사만이 하나님 나라의 일인것처럼 오도하게 한다. 그런 설교는 설득력이 없다. 

오늘 설교의 내용의 대부분은 인간 생로병사가 하나님께 달렸으니 하나님께 잘보여라, 다시 말해 교회봉사를 잘 하라는 틀을 깔고 있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업이 번창하던 신자가 교회를 멀리하자 하나님이 치신다는 그런 익숙한 예화들로 대변되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들으며 나는 과연 이 하나님은 산신령과 어떻게 다른가하는 질문에 결코 답을 찾을수 없었다. 

산신령도 아침저녁 냉수사발 기도를 열심이 드리면 소원을 들어주고 그 정성이 모자라면 복대신에 화를 내린다지 않는가. 

따지고보면 물론 그 설교에서 내용상 틀린 점은 없었다. 창조주가 산신령 보다 큰 파워를 갖고 있지 않을리도 없고 그 파워로 인간의 생로병사를 주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말하고나면 도통 기독교의 하나님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잘못하면 당한다는 겁주기를 통해 교회에 사람들을 묶어두려는 듯한 그 내용은 왠지 산신령과 그 도사들의 비즈니스 전략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거기서 강남대형교회의 돈에 쩔은 뒤틀려진 기독교 냄새가 난다고 하면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 

한 사람의 삶이 풍요하게 되는 일도 복음을 통해 왜 안일어나겠냐만, 예수의 삶이 그렇게 물질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위해 희생되었던건 아니라는,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놓을 수는 없다.

 그저, 내 머리속에서 나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향해 설교를 하고 있었다고 치자. 그래서 들리던 설교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하자. 아, 이 굶주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