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산타 바바라 주말 오후

별아저씨의집 2010. 6. 20. 09:15
푸른 빛 바다가 물결 친다, 간간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산책을 하는 사람들,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햇살은 눈부시고 적절한 바람이 사뭇 한가롭다. 새로 마련된 게스트 하우스는 가정집같은 느낌이다. 언제나 처럼 여기 산타 바바라는 시간이 멈춰있는 듯.

늦게까지 바지락거리다가 다운타운으로 발을 떼다. 자주가던 북극성 까페는 테이블을 재배치해서인지 분위기가 좀 다르다. UCSB의 학기가 끝나서 훨씬 덜 붐비는 듯한 타운은 그래도 여전히 스테이트 거리를 걷는 쇼핑객과 여행객, 그리고 한가로운 젊음들로 활기차고 흥겹다. 

학기 내내 끝없이 밀려들던 '일'을 뒤로 하고 훌쩍 떠나버릴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태양계의 시공간을 넘어 어느 외계 행성에 홀로 던져진 듯. 언제나 여기서 나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여러 분야에서 학계를 리드하는 미국시장, 좋은 직장과 연구비와 매력적인 프로젝트들을 놓고 경쟁하는 많은 젊은 연구자들의 무대, 여전히 비슷한 게임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 무대를 떠난 내게 비치는 그들의 모습은 왠지 무척이나 이방인같다. 비록 그 모습이 불과 1년 전의 내 모습이었지만. 내 삶의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학자로서의 삶. 내가 원하고 사랑하고 갖게 된 삶. 그 자리에 나는 또 어떤 의미들을 부여하고 새로운 내용들을 담아야 하는 걸까.

불혹이라는 나이. 그것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만큼 성숙한 나이라기 보다는 별로 유혹될 만한 것이 없는 흥미를 잃어버린 삶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는 것, 명예를 얻는 것,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는 것, 그런 것들이 정말 삶을 추동할 수 있는 값진 것들일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은 그것을 얻은 자만이 할 수 있다는 논리도 그저 어리고 미성숙한 자들에게나 통하는 것이 아닐까.

거의 무한한 시공간, 70억이 되어가는 세계 인구,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존재의 의미는 어떻게 확보되는 걸까? 수많은 세상의 프로파간다에 미혹되지 않는다면, 젊은이들이 마약을 하거나 자살을 하지 않는 것은 기적이란 생각이 드는 건 논리적 귀결이 아닐까. 잃어버린 천국으로 인한 채워지지 않는 빈공간은 그렇게 우리 삶을 막다른 길로 밀어부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잃어버린 천국 때문이라는 것을 모른다면 결국 인생은 지옥에서 시작해서 지옥으로 끝난다는 것은 가장 지혜로운 답일테니까. 

내 영혼의 세포의 세계 안으로 들이밀 듯, 뭔가 클릭이 얼어나는 그 신비는 어떻게 발생하는 걸까?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손에 잡힐만 한 것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있는걸까? 예술의 세계에 있는걸까? 아니면 인간정신의 위대함에 있는 걸까? 그도 아니면 뚜렷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하찮은 듯한 우주의 일상에 있는걸까? 만져지지 않는 초월의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이 우주공간의 오늘 하루의 삶에 들어오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