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출판을 앞두고 있다는 책의 추천사를 부탁받았다. 성탄절 즈음에 썼던 글인데 최근에 책이 출판되었다. 원서 제목과는 다르지만 대중에게 쉽게 기억되는 짧은 단어로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책 값은 비싸지만 완전 칼라판이다. 내 책도 이렇게 칼라판으로 나왔으면 좋았을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다. 최종 편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확인못했는데 사진은..... 직접 보시라.
별 - 우주의 진화, 137억 년의 이야기
추천사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빛이 끊임없이 우리를 부른다. 오색찬란을 넘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빛들이 변화무쌍한 우주 얼굴의 베일을 벗기고는 끊임없이 손짓한다. 시시각각 터지는 우주의 불꽃놀이가 우리의 시선을 낚아챈다. 짧은 인생과 아담한 인류의 역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우주의 주인공들이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인다. 지구라는 좁은 동굴을 나와 드넓은 우주의 화려함을 한번쯤 구경해 보지 않겠냐고.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정한 발견을 위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저 하늘 밖 우주에는 무한한 새로운 풍경이 있다. 인류의 역사가 다 끝날 때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주에서 새로운 풍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에게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같은 풍경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눈으로 본다면,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광경을 목도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가 위대한 우주를 끝없이 연주해왔지만 우린 그저 바이올린 소리 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물론 바이올린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감동은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는 듯 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모든 악기의 소리를 함께 들어야만 한다.
지난 백여년 동안 천문학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주된 이유는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이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빛깔 밖에 보지 못했다면, 현재 우리는 빨간색 보다 더 붉고 보라색보다 더 진한 빛들도 볼 수 있게 되었다. 핵폭탄이 터질때 나오는 감마선이나 몸을 투시하는 엑스선, 열을 감지하는 적외선 등 가시광선 이외의 빛들을 검출해 낼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21세기 과학기술의 축복을 받은 우리는 그래서 바이올린 소리뿐만 아니라 우주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들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우주의 다양하고 장엄한 빛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이 얼마나 운이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태양과 행성들이 지구주위를 회전한다는 천동설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무너뜨린 이후에 지구는 영영 우주의 중심에서 멀어져버렸다. 그 태양마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태양계는 그저 우리 은하의 주변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도 수없이 많은 은하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힌 20세기 초의 논쟁이 끝난 뒤, 우리가 우주의 중심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그러나 우주의 중심에서 멀어진 것은 그저 공간적으로 그렇다는 것 뿐이다. 공간적 위치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해서 사실 무엇이 대수일까? 우리가 우주의 중심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주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이해하는 자가 바로 우주의 주인공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하늘의 운행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 지식을 이용하여 권력을 쥐었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더이상 권력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광대한 우주에서 주인공으로 사는 것은 바로 이 우주의 운행을 이해하는 것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자가 역사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와 위치를 깨닫듯, 우주의 역사와 흐름을 이해하면서 우리는 그 우주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빛의 세계가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책을 가득 메우고 있는 화려한 사진들은 변화무쌍한 우주의 스냅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을 보면 일단 멋지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그랜드 캐년에 간 적이 있다. 엘에이에서 열시간 쯤 운전했을까? 국립공원에 도착한 나는 앞에 펼쳐진 웅장한 광경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나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해서는 안내자가 필요했다. 공원을 감시하기도 하고 가이드가 되어주기도 하는 레인져를 따라 투어를 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그랜드 캐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일 자체는 흥미로왔고 감동스러웠다. 그랜드 캐년이 어떤 역사를 통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고 보는 것과 그저 겉모습이 웅장하다고 생각하며 보는 것이 같은 감동을 줄 수는 없다. 그렇다. 여행에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특히 우주여행은 반드시 그렇다. 앙드레 브라익과 이자벨 그리니에의 이 책은 변화무쌍한 우주의 신비들을 한눈에 보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화려함으로 빛나는 우주의 풍경들 중에 저자들은 4가지를 골랐다. 첫째는 별이 탄생하는 아기별의 요람, 둘째는 별이 최후를 맞는 별의 무덤, 셋째는 우주의 괴물인 거대블랙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들의 충돌이다. 오리온 성운, 말머리 성운, 불꽃 성운, 삼렬 성운, 용골자리 성운 등등, 한번쯤 들어본 것도 같고 어디선가 본 듯도 한 이 성운들의 사진들은 보는 것 만으로도 신비롭다. 하지만 도대체 이 사진들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이해한다면 그 신비로움은 배나 더 할 것이다. 자연의 죽음은 아름답다. 그것은 그 죽음이 새로운 생명을 낳기 때문이다. 욕망과 욕심때문에 추한 최후를 맞는 많은 인간들의 삶에 비해 모든 자연의 죽음은 위대하고 아름답다. 별의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별의 죽음이 없다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탄소들을 만들어질 수 없었고 행성과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었다. 별의 최후의 장면을 목격하는 일은 더없이 흥분된다. 때려부수는 영화를 보는 것, 불난 집을 구경하거나 불꽃놀이를 즐기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별의 최후는 거대한 스케일의 대광경을 연출해 낸다.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거대블록홀은 또한 어떠한가? 20세기말 부터 천문학의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떠오른 거대블랙홀. 최근에 밝혀진 거대블랙홀의 신비는 더할 수 없는 호기심을 야기시킨다. 모든 빛을 잡아먹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블랙홀, 그 블랙홀이 만들어내는 빛의 세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우주를 구성하는 소우주라고 할수 있는 은하들의 충돌, 그 장엄한 시공간의 역사를 살피다보면 홀연히 넋이 나간다. 자, 이쯤되면 저자들이 보여주는 풍경들을 찬찬히 살필 때가 된 듯 하다.
위대한 수학자이며 철학자였던 라플라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적으며, 우리가 모르는 것은 방대하다" 그렇다. 우주의 풍경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는 더 깊은 의문에 쌓인다. 이 풍경들에 담긴 화련한 빛의 연출을 하나하나 이해할수 있다는 사실은 인류의 위대함을 드러내지만, 반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질문들은 인류에게 겸손을 요구한다. 그러나 앎과 모름의 어딘가에 서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우주의 풍경을 누릴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