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글] 월간 복음과상황 2003년 11월호 : 시간, 우주의 나이, 그리고 초월자 - 우종학

별아저씨의집 2003. 11. 2. 04:00
시간, 우주의 나이, 그리고 초월자 (월간 복음과상황 2003년 11월 호)

우종학

2003년이 후다닥 도망가고 있다. 긴 겨울이 끝난 듯 싶더니 어영부영 덥지도 않던 여름이 홀연히 지나고 이미 스산한 바람이 늦가을 맛을 내려한다. 백억 년이 넘는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눈깜짝할 새도 되지 않는 삼십여 년의 시간마저 다 가늠하지 못한 채, 광활한 우주의 미세한 먼지 크기도 되지 않을 작은 동네에서 나는 하루를 산다. 영원히 산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정밀 우주론에 도전한다.

아직 몇 달이 남긴 했지만 올해 천체물리분야에서 가장 큰 뉴스가 되었던 건 더블유멥(WMAP: 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이라 불리는 위성의 관측 결과였다. 윌킨슨이라는 학자의 이름이 붙여진 이 위성은 대략 윌킨슨 우주배경복사 탐사선쯤으로 부를 수 있겠다. 2001년에 발사된 이 위성의 첫 결과가 지난 2월에 발표되었는데 그 결과를 한마디로 한다면 정밀한 우주론의 제시, 그리고 137억 년이라는 정확한 우주의 나이측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위성은 이름그대로 우주 생성초기에 발생한 배경복사를 관측하는 위성으로 1992년에 우주공간에 올려졌던 코비(COBE: Cosmic Background Explorer)위성의 후속타이다. 배경복사라는 것은 대폭발을 통해 막 탄생한 아기우주가 내던 고온의 복사파가 백억 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오면서, 그리고 그만큼 우주가 팽창하면서, 저온의 마이크로파(전자레인지에 쓰이는 전파라고 생각하면 된다)로 변해서 사방팔방에 남아 있는 흔적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주의 전 방향에서 이 배경복사가 포착된다. 지상의 전파망원경으로 관측되던 이 마이크로파가 정말 아기우주가 내보낸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92년에 발사된 코비위성은 이 복사파가 우주 전 방향에서 매우 균일함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대폭발 우주론은 강력한 증거를 갖게 된다. 그러나 15퍼센트나 되는 오차로 정밀도가 떨어지는 코비위성의 측정장치들에 비해 더블유맵 위성은 삼사십 배나 향상된 장비들을 가지고 말 그대로 정밀한 관측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은 우주의 역사를 밝혀내는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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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더블유맵 위성이 촬영한 우주배경복사 지도. 절대온도 2.73도에 해당하는 이 복사파는 우주의 나이가 겨우 몇 십만 년 되었을 때 발생한 것으로 사람에 비유하면 출생일에 찍은 사진과 같다. 사진에서 보이는 색깔의 차이는 복사파의 온도차이인데 가장 심한 경우에도 백만분의 1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자료출처: map.gsfc.nasa.gov)

그림 2. 더블유맵 위성의 위치. 더블유멥 위성은 허블망원경처럼 지구 주위를 도는 과학위성들이나 한반도 상공에 고정되어 있는 무궁화위성과 같은 통신위성들과는 다르게, 지구로부터 태양 반대 방향으로 백 오십 킬로미터 떨어진 점에 위치하고 있다. 흔히 지구-태양 궤도의 라그랑지 포인트(Lagrange point)라고 불리는 이 위치는 태양과 지구간의 중력이 조화를 이루어 위성체의 연료를 절감할 수 있는 위치이다. (자료출처: map.gsfc.nasa.gov)


우주의 나이를 재라!

우주가 과연 언제 시작되었을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가 영원 전부터 존재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먼 은하들이 우리가 사는 은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고 더군다나 더 먼 은하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20세기 초에 에드윈 허블에 의해 발견되자 사람들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렇게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다 (풍선에 여러 개의 점을 찍은 뒤에 크게 불어보라). 그 후, 우주가 어느 시점에 대폭발을 통해 시작되어 계속 팽창해왔다는 ‘대폭발 우주론’이 정설로 대두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대폭발이 과연 언제 일어났는지에 쏠렸다.

하지만 우주의 나이를 측정하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만일 우주가 균일한 속도로 팽창해 왔다면 현재의 우주팽창률을 재어서 그 값으로부터 거꾸로 우주의 나이를 구할 수 있다. 흔히 허블 상수라고 불리는 이 우주팽창률은 우주 나이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이 값을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수많은 연구 프로젝트들이 수행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비교적 정확한 허블 상수 값이 측정되었다. 그러나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주의 팽창속도는 계속 변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팽창 속도가 과거에는 더 빨랐거나 혹은 더 느렸을 수도 있기 때문에 현재의 우주팽창률만으로는 우주의 나이를 측정할 수 없다는 얘기이다.

우주팽창률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주의 구성성분을 알아내야 한다. 우주에 얼마만큼의 질량과 에너지에 있는지에 따라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가 결정되고 거기에 맞게 우주팽창률의 변화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가령, 우주에 질량이 너무 많았다면 팽창을 상쇄하는 중력 때문에 우주의 팽창률이 느려질 수도 있고, 반면 중력을 상쇄하는 어떤 에너지가 존재한다면 현재의 우주팽창은 가속될 수도 있다. 결국 현재의 우주팽창률(허블 상수)과 우주의 구성성분을 동시에 알아야만 정확한 우주의 나이 측정이 가능하다. 20세기 후반의 우주론자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질량이 대략 어느 정도 되는지에 대한 척도를 갖게 되었고 구해진 허블 상수와 더불어 그렇게 우주의 나이를 구했다. 그 값은 대략 90억 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구해진 우주의 나이는 큰 난관에 부딪힌다. 왜냐하면 별의 일생을 연구하는 항성진화이론이 제시하는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별의 나이보다 우주의 나이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가장 오래된 별들의 나이는 대략 120억에서 150억 년으로 제시되었다). 아들의 나이가 아버지보다 많은 셈이다. 이 문제는 결국 우주의 구성성분에 대한 이해에 뭔가 오류가 있다는 것을 뜻했다. 해결의 실마리는 암흑에너지(dark energy)가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한다는 ‘우주상수 우주론’에서 나왔다. 우주상수는 쉽게 말해서 암흑에너지가 우주팽창에 미치는 효과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우주에 암흑에너지가 많다면 암흑에너지가 없다고 가정하고 구한 것보다 훨씬 많은 우주의 나이가 구해진다. 20세기 초, 우주가 팽창한다는 예측을 낳는 자신의 이론을 못마땅해 했던 아인슈타인은 중력방정식에 고의로 하나의 상수를 집어넣었는데 이것이 우주상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우주상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주는 과학자들이 그때까지 이해했던 바와는 다른 구성성분을 갖게되고 우주의 구조는 새로운 모습이 된다. 20세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주나이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점을 찾아갔다. (우주상수가 나타내는 암흑에너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천체물리학자들은 아직 뚜렷한 답변을 갖고 있지 못하다.)


우주의 나이 137억 년

허블상수와 우주의 구성성분을 구하려는 많은 시도를 통해 그 값들이 상당히 제대로 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각 측정값의 오차는 여전히 컸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우주의 나이를 대략 120억 년에서 140억 년 사이로 여겨왔다.

하지만 이제 더블류맵 위성의 정밀한 결과를 통해서 우주의 구성성분에 대한 자세한 그림이 그려졌다. 그에 따르면 우주의 73%는 우리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엽기적인 암흑에너지로 구성되어 있고, 23%는 역시 천체물리학자들을 여전히 당황케 하고 있는 암흑물질(dark matter)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머지 4%만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소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이런 각 구성성분들의 역할을 통해 우주의 기하학과 과거의 우주팽창률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결국 오차 1 퍼센트 안팎의 정확한 우주의 나이가 보고되었다. 우주의 거대구조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해가 옳다면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다.

4년의 수명을 가진 더블유맵 위성의 첫 1년 치의 관측 결과가 발표되자 어느 학자는 관측우주론은 이제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관측우주론은 먼 우주의 초신성이나 배경복사 혹은 오래된 별로 구성된 성단 같은 대상을 연구함으로써 보다 정확한 우주론의 상수 값들을 찾아가는 천체물리의 주요한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 더블유맵 위성의 결과를 통해 이제 정확한 값들이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얘기였다. 물론 아직 자세한 그림들을 찾아야 할 흥미로운 일들이 남았으므로 관측우주론의 종말을 얘기하는 것은 과민반응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거나 우주의 나이에 대한 긴 숙제가 풀렸다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더블유맵 위성의 결과로 모든 우주론의 문제가 풀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학이란 항상 열린 가능성을 갖는다. 물론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 아니라 만년에서 십 만년 사이다라는 식의 새로운 과학결과가 나올 리는 거의 만무하지만 허블 상수 값이 새로 측정되거나 암흑에너지의 존재가 다르게 해석되거나 해서 다른 우주의 나이 값이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더블유맵의 관측 데이터를 새롭게 제시된 우주론 모델에 맞춰보면 예측 값에서 상당히 벗어나는 몇몇 값들이 존재한다. 4년의 총괄적인 관측결과가 나오면 이 문제가 해결될거라는 의견이 제기되었지만 우주론자들은 더블유맵 위성의 결과가 함축하고 있을 다른 가능성에 대해 한참 토론 중이다. 무엇보다도 우주의 73퍼센트를 메우고 있는 암흑에너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주의 나이 137억 년”이라는 자부심에 조용히 겸손을 충고한다.


시간과 초월

우주가 갖는 시간과 공간의 스케일은 항상 매력적이다. 우리의 상상력을 다 받아줄 수 있는 막힘 없이 광활한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질 날이 올까? 과학에 관심 많은 일반인들은 그렇다 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상관이 있을까?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으로 측정되었다는 최첨단 과학 뉴스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얼까?

첫째, 과학의 결과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복이다. 예술가인 어머니가 그린 유화를 보면서 그 심미로움을 감탄하는 일, 건축가인 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지은 빌딩의 건축과정에 관심을 갖고 그 건물을 돌아보는 일은 어머니, 아버지와의 사귐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들의 작품에 무관심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자연스레 관심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 것은 바로 그것들을 통해 그분들이 삶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우주는 창조주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과학의 대상이 되는 자연은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예술이다. 주께서 지으신 우주의 구조와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분명 그분과의 사귐의 연장일뿐더러 우주의 주인 되신 그분의 자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며 특권이다. 훌륭한 음악활동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부모의 연주를 한번도 감상한 적이 없다면 그건 불행이 아닐까?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는 것은 바른 신앙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과학이 무서운 권력을 휘두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과학은 때론 우리의 신앙을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과학에 무지한 것은 너무나 커다란 약점이다. 사실 과학 자체는 우리의 신앙에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라는 것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지한 중에 과학적 사실은 얼마든지 신앙을 위협하는 도구로 탈바꿈 될 수 있다. 과학에 깜깜한 한 그리스도인을 찾아와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며 신이 없음이 확실하다고 누군가가 따질 때 ‘그건 잘못된 거야. 과학이 틀렸어. 신은 분명히 존재해‘라고 반박한다면 그야말로 동문서답이다.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걸까? 아니다. 이런 일은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의 영역을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하는 일, 중립적인 과학지식이 반신앙적 무기로 탈바꿈되는 일, 그리고 그 둘이 부딪히는 곳에서 외계인과 얘기하듯 동문서답이 펼쳐지는 일.... 그렇게 신앙과 과학은 대립하고 하나님의 영광은 축소된다.

우주의 나이가 만년이라는 젊은지구론을 믿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예전에도 설득력이 없었지만 새로운 과학의 결과로 더욱 힘을 잃었다. 과학이 틀렸음을 보여서 신의 위대함을 보이려는 시도는 때로 쓸모가 있겠지만 최소한 우주의 나이에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가보다. 성경과 자연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책이다. 과학에 무지한 건 바른 신앙에 좋지 않다.

137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는 시간에 초월하신 그분에 대한 묵상을 낳는다. 137억 년보다 긴 물리적 시간은 아직 없다. 왜냐하면 137억 년 전에 시간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우주가 탄생하기 전, 137억 년 전은 무엇일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137억 년 전에도 계셨을 그분은 시간을 초월한다. 시간을 초월한다는 말이 그리 명확하지는 않다. 그저 상상력을 가지고 희미하게 그려볼 뿐. 그건 이 땅에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많은 질문들에 속한다. 분명한 건, 우리의 불완전한 이해 안에 그분을 가두기보다는 시간에 구속되지 않는 그분의 위대함을 그저 상고해야 한다는 것.

137억 년의 세월을 통해서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빛과 물질을 분리하여 기초적인 입자들로부터 원소를 만드시고 별의 진화와 폭발을 통해 우리 지구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지으신 그 분. 인간의 짧은 역사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장구한 세월의 우주의 역사를 통해 2003년 현재의 찬란한 우주의 모습을 눈앞에 제시하시는 그 분. 해와 달, 식물과 동물, 그런 것들을 지으시는데 하루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아 창세기 기사의 '하루'는 실제 하루가 아니라 매우 짧은 시간이었을 거라고 여겼던 어거스틴처럼, 137억 년이 아니라 몇 초 만에도 현재의 우주를 지으실 수 있는 그분이 이런 방식으로 우주를 지으신 건 왜일까를 생각해본다. 족장시대와 사사시대가 지나고 화려한 왕국이 빛나다가 유대마저 멸망한지 400년이 지나서야 예수를 보내신 건 왜일까? 그분이 오시기까지 더 길 수도 더 짧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그때였을까? 왜 137억 년일까? 그분은 잠자코 웃으신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