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노무현을 보내며

별아저씨의집 2009. 5. 30. 08:04
밤 늦게까지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영결식과 노제, 그리고 화장 장면까지 지켜봤다. 허탈하고 뭉클하고 미안하고 화나고 실망하는 복잡한 감정 속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그의 국민경선을 지켜보지도 그의 대통령 선거에 한표를 더해주지도 못했고, 그의 5년의 재임기간도 그저 미디어에 나오는 소식들을 듣고 멀리서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탄핵 소식에 밤을 지새웠고 그리고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열기를 보며 희망을 가졌었다. 권력을 스스로 놓아버린 힘없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은 좋지만 한국사의 현시점에서 과연 실현가능한 이상일까를 의심했고 결국 그의 참여정부는 실패에 가깝게 끝났다. 그러나 촌부로 돌아간 퇴임 후의 모습을 보며 한국사회에 아직도 희망이 있음을 보았다. 그의 죽음, 그리고 떠나보내는 장례식까지, 이국 땅에 있는 나에게 노무현은 그저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대상이었다. 

김영삼의 3당 야합에 반대해 '이의 있습니다'를 외쳤던 청년 노무현에 반해 노사모 회원수 하나 늘려주었고 80년대를 보낸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지며 살인마라고 한 그 노무현. JP와의 연합을 통해 겨우 정권을 바꿀수 있었던 DJ와도 다르게, 그는 말 그대로 비주류 정치인이었고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철학에 입각해 무리수를 두는 바보 정치인이었다. 친일과 독재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고질병을  넘어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며 서민들을 위한 정부를 만들고자 했던 노무현.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 그의 존재는 하나의 소망의 원천이었다. 




인간적으로 그가 좋았던 이유는 그가 권위를 싫어했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점 때문이었다. 권위주의에 두드러기가 나는 나로서는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한 그의 인간성에 끌렸고, 권위에 기대어 명령을 내리는 낡은 방식보다 상식과 이해에 기초해 동의를 구함으로써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론을 가진 나에게 어쩌면 비효과적인 그의 통치의 방식은 매력적이었다. 그가 스스로 대통령직에 자신이 잘 맞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도 바로 권력과 권위주의에 기초한 한국사회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라는 직업이 갖는 수직적 경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떠났다. 
그러나  그는 마음 깊이 간직할 한국의 정치인으로 남는다. 

노무현을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