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덕치를 넘어

별아저씨의집 2022. 2. 24. 16:00
덕치를 넘어 - 우종학 (220223)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서 그의 민정비서관이었던 백원우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죄하라고 외쳤다가 끌려나갔습니다. 그때 문재인은 친구이자 동지였고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습니다.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인간 문재인에게 반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울부짖는 어느 어머니를 안아주던 모습을 비롯해 그의 인품에 반할 일은 많았겠습니다만 저는 그 장례식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장면은 대통령으로서 그의 모습을 예견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으로 마땅히 부딪히고 밀고나갔어야 할 일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원수에게도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던 그 모습이 어쩌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이 정부의 숙원들을 해결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 그 어디엔가 깊숙히 박혀있다 싶습니다.
 
그래도 그를 원망하긴 어렵습니다. 사람을 품어내는 그의 힘이 더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딪히고 깨트리고 희생을 감수하는 것보다 사람을 감화시키고 얻어내는 것이 더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종종 설득되기도 하지만 내 맘 속 깊숙이 자리잡은 인간에 대한 불신은 문통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고 비판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래도 몇달 남지 않은 재임 기간 끝까지 40%의 지지율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그 장례식 장면에서 봤던 어떤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덕치가 나라를 망치기도 합니다. 실수도 넘어가고 잘못도 봐주고 적을 내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문란해 집니다. 좋은 면도 많겠지만 그런 덕치는 퇴색을 불러옵니다. 자를 것은 자르고 태울 것은 태워야 합니다. 침투한 바이러스를 내버려두면 병을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대통령의 자격으로 인품을 1순위로 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같은 정치인을 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인품에만 기댈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존중을 갖춘 사람이라면 충분히 훌륭한 인품입니다. 고결하고 선비같은 혹은 공자 수준의 인격을 바랄 필요는 없습니다. 종교지도자를 뽑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영향력을 갖는 지도력입니다. 아무리 인품이 좋아도 무능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면 피냄새를 맡은 각종 권력의 탐욕자들에게 물어뜯겨 시체만 남을 것입니다.
 
인품을 가장하여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SNS에서도 수많은 논쟁을 해봤지만 표현은 예의바르고 욕도 한마디 하지 않지만 실제 내용은 지독하게 무례하고 추악한 인격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온화한 표정, 공손한 말투, 인사 잘하는 예의바름, 저는 다 껍데기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필요하지만 본질을 가릴 수 있습니다.
 
이번 주 들어 여론조사 1위로 순위가 바뀌었다는 이재명 후보는 욕설 사건 때문에 절대로 찍을 수 없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가족사의 배경에서 욕설이 나왔고 그 당시 앞뒤 맥락이 어땠는지 알아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절대 다수의 유권자는 그런 디테일에서 멉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쳐도, 욕하는 걸 못봤으니 인품이 훌륭할 것으로 판단하고 다른 후보를 뽑겠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대통령을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에게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을 볼수는 없겠습니다. 그 뼈아픈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보인 문통의 모습을 이재명 후보에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저는 그 모습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나라를 인품으로 다스리는 한계 대신에 부딪히고 밀고 나갈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가장 힘쎈 권력은 일반적인 개연성을 가진 검찰이나 언론이 아니라 구체적 사안에서 커다란 이익을 취하려고 집중적인 힘을 발휘하는 돈과 관련된 세력입니다. 가령, 대장동이나 부산 엘시티에서 엄청난 이익을 뽑아내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검찰이나 언론도 어느 시공간의 구체적 사안에서 막대한 부가 관련된다면 얼마든지 엄청난 힘을 가진 적대세력이 될 수 있습니다.
 
5년쯤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의 한계를 넘어야 합니다. 180석 여당으로 몰아줘도 처리되지 않는 법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들의 엉뚱한 힘자랑과 인품의 힘으로는 도저히 넘어가지 않을 타락한 정치인들과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옆에서 치킨을 시켜먹던 시정잡배들과 구조적 악을 생각하면 보다 실용적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말을 거칠게 하는 수준은 애교로 넘겨야 합니다. 덕치의 군주를 뽑는 게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덕치의 군주를 뽑아서는 안됩니다.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얼마든지 남미의 여러나라들처럼 될 수도 있겠습니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권력은 타락하고 부패가 만연한 나라로 가서는 안됩니다. 욕보다 보복하겠다는 말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지키기 쉽지 않은 공약보다 내용 없는 공약 혹은 내용도 모르고 던지는 공약이 더 나쁩니다. 문재인이 선이고 박근혜가 악일 수도 없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야야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관계를 통틀어 미래를 내다보고 적과 싸우며 피도 흘리고 나라를 바르게 끌어갈 사람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최적은 아니더라도 나의 현실적인 선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