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이념 투표 vs 이익 투표

별아저씨의집 2022. 2. 19. 14:11
이념 투표 vs. 이익 투표
천만원 보증금에 몇십만 원 월세내는 70대 독거 노인이 사는 장면을 어제 밤 TV로 잠깐 보았습니다. 광명 재개발 구역에 사는데 앞으로 어디서 살아야 할지 걱정합니다. 6평 짜리 그 집은 이제 5억, 6억 한다고 하지만 이 분은 어디로든 쫓겨나야하는 상황입니다.
 
이 70대 할머니에게 대통령 선거는 무슨 의미일까 싶었습니다. 사드배치나 대중관계, 검찰과 언론 개혁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멋지다고 하는 일부 청년들의 반응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장년들의 걱정어린 글들을 어쩌다 봅니다. 걱정의 취지는 이해됩니다만 대학생들에게 혹은 청년들, 그들의 기준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싶습니다.
 
50대들 중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념에 물들어서 이념투표를 한다고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대별 차이 혹은 세대 안에 큰 차이가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다들 자신의 이익에 따라 투표합니다. 도대체 누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며 이념에 물들어 투표를 한다는 걸까요? 그런 사람들은 매우 소수라고 생각됩니다.
 
일제 시대 떵떵거리던 부자였지만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그 부를 희생하고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렇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민족주의와 독립사상 이념에 물들어서라기 보다는 일제의 압제를 벗어나는 것이 살 길이었기 때문에 독립 운동을 했습니다. 결국 독립운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길이었겠습니다. 물론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 희생과 정신을 폄하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반대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의 대동아 사상에 심취해서 그랬다기는 보다는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랬습니다. 영화 '암살'에서 반역자의 대사처럼 해방이 될 줄 몰랐기 때문에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386년 세대가 청년 시절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화염병과 돈을 던졌던 것은 주체사상에 심취하고 종북사상에 물들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혹은 민주주의 사상으로 투철하게 무장하고 군부독재를 타파하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소수 학생운동의 주체들을 빼고 대부분은 사실 군부독재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려야 나와 내 가족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돌을 들었습니다. 툭하면 닭장차에 잡혀가고 불신검문을 당하며 고문으로 죽고 최루탄 총에 맞아 죽는 친구들 혹은 동료 대학생들을 보며 간첩으로 몰리는 억울한 사람들을 보며 돌을 들고 화염병을 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무시하거나 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희생은 결국 나와 가족 그리고 국민의 이익을 내다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데모하지 않고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던 학생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이념과 이익은 주로 함께 섞여서 동기가 됩니다. 이익을 반하게 되는 선까지 가게되면 이념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그 선을 넘는 사람들은 매우 소수입니다. 톨스토이처럼 귀족이었지만 농민으로 살고, 자신의 토지를 농노들에게 다 나누어준 그런 사람은 말그대로 자신의 이익에 반해서 이념을 위해 살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2022년 한국사회에서 어떤 맹목적인 이념이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념에 붙들려서 일수도 있겠지만 따져보면 그것이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기소를 당하고 탈탈 털려 시달리다가 심지어 법원의 무죄선고를 받아도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걸 목격한 사람들은 내가 그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검찰개혁을 외칩니다. 이익에 기반한 동기입니다. 그걸 이념으로 몰아 정치적 이념에 물들었다 하는 건 지나치다 싶습니다. 제가 보기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념은 이익을 기반으로 할 뿐입니다.
 
이대남에 대한 많은 분석이 나옵니다만 하나도 설득력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세대간 차이 만큼의 큰 차이가 이대남들 내부에 분포하고 있을텐데 하나로 묶어서 이렇다 저렇다 표현하는 것은 그저 주사위의 한 면 만 보는 일반화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일부 청년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거나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것도 반-페미니즘 사상에 도취되어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입니다. 역차별을 당하고 오히려 기회를 박탈당하는 위기 의식에서 나온 어쩌면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기반을 둔 주장입니다.
 
이념 투표라는 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싶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며 투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을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월세 사는 70대 독거노인도, 대학생때 화염병을 던졌던 50대 중후반 아저씨도, 영끌해서 집을 사서 집값이 떨어지면 안되는 30대 젊은 부부도, 정규직을 얻을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20대 청년도 다 자신의 이익에 맞게 투표하는 법입니다.
 
중요한 질문은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어떤 투표가 정말 나에게 이익이 되는 투표인가입니다. 보편 복지가 더 확장되는 것이 나의 이익일까요? 내가 부와 권력을 갖게되면 복지 별로 필요없습니다. 노령연금도 필요없겠지요. 그러나 내가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독거노인이 된다면 반대가 됩니다. 내 집값을 오르게 하는 정부가 나를 위한 정부일까요? 내 집 값이 오르면 옆집 값도 오르니 더 큰 집으로 이사가기 쉽지 않습니다. 세금만 많이내고 실효성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집값이 안정되어 주거비용이 줄어드는 것이 나라 경제에 전반적인 도움이 되고 결국 나의 이익에 더 부합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이 갈리겠습니다. 누구는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더 좋겠다 싶고 누구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는게 더 좋겠다 싶습니다. 이익 투표는 당연한 일이고 누구도 비난할 수 없겠지만 과연 장기적으로는 그리고 나를 넘어 우리 아이들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서 누가 더 이익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보다 현실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두번째는 나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는 성숙함이 있는가 입니다. 더 나아가서 나를 넘어 사회적 약자를 고려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질문입니다.
 
목사들이 어느 대선 후보를 안수하는 것은 혹은 어느 우파 목사가 후보 배우자를 만나는 일은 기독교계에 이익이 되는 일일까요? 부와 권력에 줄을 서온 보수 기독교 세력에 물론 득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한국교회의 신앙적 이익에 부합하는 건지는 의문입니다. 정치세력화된 종교집단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어떤 행동을 해도 자본주의 관점으로는 비난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자본주의 우상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번 대선은 부동산 대선이라고도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나의 부동산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판단합니다. 집이 있는 사람도 집어 없는 사람도 투기세력도 투자하는 분들도 월세사는 분들도 다 그렇습니다.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기반으로 합니다. 자신의 부동산 이익에 반하더라도 소외된 사람들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투표하는 사람들, 즉 그런 이념 앞에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희생하고 이념을 좇으라는 메세지 자체가 설득력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고 결국 정치의 성숙도는 나의 이익을 넘어 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때 올라가는 법이겠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멀리내다보면 오늘 나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나와 자식들의 이익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 폭락하는 주식시장에서 단타로 돈을 벌 궁리를 하기 보다는 기업들이 건실해지고 주식가치가 올라가서 전반적으로 주식가치가 오르는 쪽으로 가는 것이 결국 나의 이익이 되는 법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념 투표를 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다 이익의 관점에서 투표를 해왔다 싶습니다. 반대로 제 아버지는 평생 이념투표를 하신 듯 합니다. 경상도 출신이었기에 보고 듣는 정보에 한계가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개인사업을 하셨지만 서민으로 노동자로 사셨습니다. 하지만 서민과 노동자를 위하기 보다는 기업과 재벌 그리고 기득권을 더 위하는 대통령에 주욱 투표를 해 오셨습니다. 이념투표가 아니라 계급 투표 혹은 이익 투표를 하시라고 말씀드려도 아버지의 그 '이념'은 평생 변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러나 저는 그만큼 이념적이지는 못합니다. 저는 철저히 이익 투표를 할 것입니다. 물론 제 직업과 상황을 고려할때 단기적인 이익을 기준으로 하는 것과 보다 멀리 내다보고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다른 답이 나옵니다.
 
오로지 하나 저를 휘어잡는 이념이 있다는 그것은 성서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위한 사회적 제도 그리고 병자와 약자,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고 섬긴 그 분의 삶 말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항상 마음의 빚이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이념 투표를 한다면 내 이익에 반해서라도 이 이념에 근거해 현실적인 대안의 대통령 후보를 찍는 것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