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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교회는 왜 다닙니까?

별아저씨의집 2021. 9. 17. 19:25

그런 교회는 왜 다닙니까?

 

1. 성서에 따르면 오직 남성만 목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성은 목사가 되기는 커녕, 심지어 설교를 할 수도 없답니다. 그것이 성서가 가르치는 진리요, 기독교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이번 예장 합동교단 총회에서 결의한 내용이랍니다. 어떻게 이런 교회에 여성들이 다닐 수 있냐고 누가 질문하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이런 교회에 다니는 남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여성차별적인 교회에 어떻게 다닐 수가 있는 건가요? 이런 교회는 너무나 많고 그 행태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그 주장은 너무나 뻔뻔하고 위선적입니다.

 

2. 얼마 전, 일산은혜교회가 합신교단을 탈퇴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이유는 동성애 가르침과 여성목사 관련 이슈 때문입니다.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가르친다는 이유로 김근주 목사를, 그리고 교단에서 인정하지 않는 '여자사람 목사'라는 이유로 한선영 목사를 교회에서 내보내라고 합신교단이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일산은혜교회는 오히려 교인들의 뜻을 묻고 합신교단을 탈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합신교단은 일산은혜교회 목사와 장로들을 면직시키고 박탈합니다. (참고로 목사와 장로는 교단을 통해 안수받고 장립됩니다)

 

3. 최근에 일어난 이런 사건들은 교회가 여전히 성차별적이며 가부장 문화의 늪에 빠져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차별을 일삼는 교회들은 제 생각으로는 복음의 진보에 방해가 될 뿐이며 공평과 사랑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무력하게 만들고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입니다.

 

4. 여성 때문에 타락이 시작되었으니까, 남성과 여성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역할을 하도록 창조되었으니까, 그런 주장을 들으면 도대체 성경을 어떻게 읽었길래 그런 소리를 하나 싶습니다. 성서는 과연 그렇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5. 성서는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던 시대에 기록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시대의 문화가 성경에 담겨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성차별적이던 그 시대의 norm을 성서가 가르치는 진리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내를 여러명 두었다고 해서, 아내를 여러명 두는 게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와 같습니다.

 

6. 역사적으로 '인간'의 의미는 변해왔습니다. 여성과 아이는 사람으로 치지도 않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노예는 진정한 인간이 아니라고 보던 시대도 있었고 백인만 인간이라고 생각하던 시대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입니다.

 

7. 성서는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법률책이 아닙니다. 긴 시대를 거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은 누구이고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깨달아가는 역사적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폴킹혼의 표현럼 성서는 정리된 결과들이 담긴 논문이나 교과서가 아니라 다양한 실험결과들이 담겨있는 실험노트와 비슷합니다. 역사라는 시간의 축을 통해 담겨진 긴 열림(unfolding)의 과정이 성서에 담겨있습니다. 실험노트의 결과들이 종종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듯, 성서는 시간의 축에 따라 종종 모순되어 보이는 내용들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8. 그래서 성서를 읽을 때는 문화비평이 필요합니다. 당대의 문화가 반영된 것인지 혹은 성서가 가르치려는 내용인지 구별해야 합니다. 그릇과 음식을 구별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하는 작업입니다. 그룻을 음식인줄 알고 먹으면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9. 가령, 노예제도는 성서 전체에 담겨있습니다. 심지어 바울은 노예들에게 권면하기를, 주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혁명을 일으키고 자유인이 되라는 권고 대신에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바울의 권고를 읽고, 신약성서는 노예제도를 인정한다고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요? 네, 그렇게 인정했던 시대가 겨우 몇백년 전입니다. 성서를 바탕으로 노예제도의 합법성을 주장하던 어두운 시대말입니다. 성서를 바탕으로 백인과 아프리카인들간의 차별을 정당화하던 남아공의 역사는 겨우 몇십년 전입니다.

 

10. 문화비평은 노예제도나 가부장제도처럼 사회적 이슈에도 적용되지만 과학과 관련된 이슈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고대 근동인들은 편평하고 고정된 지구, 궁창 위에 있는 물층, 한 주간의 창조를 믿었습니다. 당대의 우주관이자 상식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상식은 그대로 성서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가 고정되어 있고 궁창 위에 물층이 있으며 해와 달과 별들이 모두 궁창에 있다는 고대근동의 상식이 성경에 등장한다고 해서 그 상식을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고대근동의 상식은 하나의 그릇일 뿐입니다. 그 그룻에 담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11. 성서시대의 사람들이 노예제도를 인정했다고 해서 노예제도가 성서가 가르치는 진리일 수 없고, 성서시대 사람들이 천동설을 믿었다고 해서 천동설이 성서가 가르치는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가부장적인 시대에 살았고 여성차별적인 문화가 성서에 일방적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그것이 성서의 가르침일 수는 없습니다. 그릇과 음식을 구별하는 작업은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존 윌튼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21세기 문화의 강에서 나와서 성서시대의 문화의 강으로 옮겨가서 성서를 읽어야 합니다. 거기서 그 시대의 문화의 강 속에서 성서를 이해햐야 합니다.

 

12. 물론 문화비평이 쉽지는 않습니다. 성서의 문자적 표현을 어디까지 그대로 받아야 하는가는 창조-진화 논쟁에서부터 노예제도, 가부장제도, 여성차별, 목사 안수의 문제까지 다양한 질문들과 이슈를 만들어냅니다.

 

13. 사회적 이슈에 비하면 오히려 과학 이슈는 더 쉽습니다. 우리에게는 성서 이외에도 자연이라는 책이 주어져 있으며 자연을 읽고 해석하는 과학을 통해서 성서에 담긴 내용들 중에 어느부분이 고대근동인들의 상식, 즉 그룻이며 어느 부분이 성서가 가르치는 진리인지를 구별하는데 도움을 받을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사회문화적 이슈들은 훨씬 어렵습니다. 유럽국가들이 새로운 대륙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원주민들을 만났을때, 미개해 보이고 야만적으로 보이는 그들이 과연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 유럽인들과 똑같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No 라고 대답하면 아프리카인들을 마구 노예로 삼아도 되고 남미 원주민들을 마구 학살해도 되는 논리가 되며, Yes 라고 하면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을 반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바르게 답하는데 매우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은 사회적 기준이 바뀌면서 가능하게 된 셈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차별이 남아있지만, 적어도 차별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나치즘의 잔재 정도로 세계적 지탄을 받게 되었습니다.

 

15. 과연 남성은 목사가 될 수 있고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게 창조되었을까요? 정말로 여성은 설교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일까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몇백년 전 과거로 가면 이 주장이 매우 설득력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많은 개신교 교단들이 여성을 목사로 세우고 강단에서 설교하게 합니다. 합신이나 합동 같은 답답한 교단이 가부장적 주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릇이 아니라 음식이라고 보는 신학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서의 가르침이 여성안수를 금하는가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는 건 최소한의 결론입니다. 합신이나 합동이 우리 교단만 옳다고 주장해봐야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시간이 더 흘러서 몇백 년 후에는 여성차별적인 주장인 사라질 것입니다. 성서가 노예제도를 인정한다고 주장하던 그런 잘못된 가르침들 처럼 말입니다.

 

16. 여성이 목사가 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교단 신학교에 도대체 어떤 여성이 가는건지 궁금합니다. 여성은 설교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교회에 도대체 어떤 여성이 다닐 수 있을지 참 궁금합니다.

 

17. 아니라 다를까, 합신교단 합동교단은 여성목사 금지라는 가부장적 주장 뿐만 아니라, 지구6천년설을 가르치는 교단이기도 합니다. 우주와 지구와 생물의 진화는 거짓이고 과학은 속임수라는 음모론을 가르치는 교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두가지 문제는 똑같은 문제입니다. 그릇과 음식을 구별하지 않고 그릇에 매달리는 주장입니다. 여성이 목사가 될 수 없고 설교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구6천년설을 믿는 건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겠습니다.

 

18. 아프가니스탄에서 텔레반이 권력을 잡고 여성차별이 심각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두 눈 외에는 옷으로 가려야 하고 남성이 없이는 외출을 할 수 없는 여성은 과연 사람으로 대접받는 걸까요? 1970년대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카불의 거리를 걷던 여성들의 사진이 생각납니다. 텔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과거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교단, 여성은 설교를 할 수 없다는 교회. 이런 교회들은 어떨까요? 우리는 텔레반 보다 낫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19. 그만 나와야 합니다. 그런 교단은 그만 탈퇴해야 합니다. 일산은혜교회처럼 교인들의 뜻을 묻고 탈퇴하는 것도 매우 민주적인 방법입니다. 개인의 입장에선 그런 교회를 나와야 합니다. 성서를 그렇게 잘못 가르친다면, 복음은 어떻게 제대로 가르칠지 염려가 됩니다. 돈과 권력의 신을 대신 가르치고 믿으라고 하는건 아닌지 의심도 듭니다.

 

20. 매년 총회가 끝나면 비슷한 뉴스가 나옵니다. 누가 교단 소식에 그렇게 관심이 있겠습니까만, 이런 교단은 그만 사라지고 성서를 제대로 가르치는 교회와 교단들이 건강하게 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