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I CAN'T BREATHE.

별아저씨의집 2020. 6. 1. 20:10
I CAN'T BREATHE.

권력은 항상 폭력을 낳기 마련입니다. 반항할 수 없게 수갑이 채워진 시민의 목을 눌러 죽인 경찰의 폭력, 증거를 조작하고 위증을 교사해서 범죄를 창조해 내는 검찰의 폭력, 외적으로 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대신 오히려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헬기로 기관총 사격을 한 군대의 폭력, 정부를 비판하는 인사들을 고문하고 간첩으로 만든 정보기관의 폭력...

이런 폭력 뿐만 아닙니다. 밖에서는 내내 약자이다가 집에 와서는 주먹을 휘두르는 가장의 폭력,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들을 때리던 선생의 폭력, 재벌은 봐주고 가난한 자는 철저하게 벌을 받게하는 판사의 폭력, 여신도를 성추행하는 목사의 폭력,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교회의 폭력, 약자들을 위한 법을 만들기보다 표를 생각하며 다수를 위한 법만 만드는 정치인의 폭력. 그리고 눈빛과 표정과 말로 남을 미워하고 죽이던 내 자신의 폭력도 빠질 수 없습니다.

경찰력으로 유지되는 미국사회. 나라가 세워진 이념과 헌법에서부터 가장 민주적인 사회일 듯 하지만 경찰력이 무너지면 약탈이 일어나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현재 미국의 모습을 비난하는 화살이 어디로 가든 간에,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친 한 생명의 죽음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I can't breathe well. 이 한마디에 의사들이 달려와 휠체어에 앉히고 다급하게 조치를 취하던 응급실의 한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도대체,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에도 그렇게 오랫동안 목을 짓누르던 경찰관의 폭력성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요? 덩치크고 잠재적 범죄자로 보이는 흑인이라서? 시위가 일어나는 극도로 긴장된 최근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한껏 높아진 상태라서? 혹은 because I can 이라서?

권력이 있는 한, 야만의 시대는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데서나 칼과 쇠붙이로 서로를 찔러죽이던 모습은 없어졌더라도 우아하고 매끈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더 강렬하고 잔인한 폭력이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권력구조를 없애면 된다는 나이브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힘의 균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더 막강한 힘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며칠전부터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도덕의 궤적' 책표지에 써있는 광고문구가 자꾸 생각납니다. 이성과 과학이 세상을 전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성과 과학이 도덕적 사회로 인류를 이끌었다는 주장은 형편없는 과장일 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성에 기대어 폭력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 소외와 빈곤의 문제,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성과 과학이 필요없으니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역할을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 그녀는 결국 구원을 얻었을까요?

저녁을 먹고 차 한잔을 마셔도 아직 날이 저물기까지 먼 시간입니다. 여전히 하루 세끼를 먹거나 가끔씩 두끼를 먹고 밤에는 침대에 몸을 눕히고 아침엔 일과를 시작합니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우리 일상이라도 여전히 우리는 쳇바퀴를 돌고돕니다. 매일 사건이 터지고 언론은 씨그럽게 떠들고 그걸 받아 우리는 이성과 감정을 쏟아부어 처절하게 소비합니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 수많은 더 험악한 뉴스로부터 자폐당한 우리 시각은 어쩌면 더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는 누구인가, 우리 인류는 누구인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쓰는 마스크처럼, 우리 내면의 무한한 악을 막아내기 위해 필요한 마스크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