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해석된 경험

별아저씨의집 2019. 5. 30. 22:45

해석된 경험

 

해석된 경험이란 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험이라는 것이 객관적이거나 우리의 세계관과 분리된 독립적인 어떤 정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하는 모든 감각적인 물리적 정보 혹은 데이타는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기온이 20도이고 남동풍이 얼마의 속도로 불고 대기의 미세먼지는 얼마고 하는 하나하나의 정보는 어쩌면 경험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 정보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으로 구성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그 총합을 우리는 경험이라고 부릅니다.

 

함께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의 표정, 눈가에 보이는 눈물, 목소리의 떨림과 그리고 말의 내용 등이 총제적으로 종합될 때, 비로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가 어떤 상태인지 우리는 인지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의 기분이 어떤지 그리고 그가 나에게 불평을 하는지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지 혹은 해결책을 원하는지 해석하게 됩니다.

 

그 해석 과정은 단지 목소리의 톤이나 눈물의 양이나 표정의 풍성함과 같은 물리적 정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나와 그의 관계, 그동안 나누었던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그가 처한 상황,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판단 등 수많은 다른 내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경험은 객관적이라기 보다 내게 들어오는 정보들을 내가 가진 하나의 틀을 가지고 종합하는 과정입니다. 경험도 우리가 가진 어떤 틀이나 관점 혹은 세계관에 따라 다르게 인지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해석된 경험"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해석이 다를 수 있고 그래서 경험의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과학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물리적 실재를 파악하고 알아가는 과정은 우선, 그 대상으로 부터 나오는 측정되는 정보에 기초합니다. 흔히 raw data 라고 하지요. 그러나 측정값들의 조각만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 정보들이 종합되어 뭔가 의미를 가질 때 비로소 그 물리적 대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실험과 측정으로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얻어내 뒤에는, 그 조각들을 잘 배열해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패턴들, 집과 사람과 풍경에 따라 퍼즐 조각들을 비슷한 색이나 형상에 따라 모으고 붙이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거쳐 푸른 산을 배경으로 하는 집과 사람의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석, 경험이 해석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해서, 경험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것들만 기억해서 어떤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정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경험된 것들이죠. 그러나 정보를 모으고 하나의 그림으로 혹은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에서 선택과 제거가 발생하고 그러다보면 왜곡된 그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경험은 해석된 경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상에서도 그렇고 연애할 때도 그렇고 과학에서도 그렇고 마찬가지로 신학이나 신앙에서도 그렇습니다.

 

실재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실재를 만지고 보고 들으며 자료를 모으지만 그 모든 일차적 자료는 해석된 경험으로 우리에게 인지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은, 경험을 포함해서, 실재가 아니라 경험된 실재, 아니 해석된 경험으로 만난 실재일 뿐입니다.

 

칸트의 표현처럼 참된 실재와 지각된 실재로 나누어 볼수도 있겠습니다. 해석된 경험은 영원히 우리를 지각된 실재의 범주에 가두어 둘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각된 혹은 경험된 실재를 바탕으로 참된 실재를 근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경험이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해석된 경험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두면 우리 삶은 훨씬 덜 고통스러워집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던진 상처주는 말들, 내 상사가 혹은 부하직원이 나를 배신했던 경험, 나를 사랑한다면서도 떠나버린 여인, 그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기억 혹은 경험은 모두 해석된 경험일 뿐입니다. 나에게 지각된 그들의 모습을 너머 참된 그들의 모습은 더 아름답고 숭고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습니다.

 

과학은 지각의 과정이고 경험의 과정입니다. 수많은 데이타를 얻어내며 실재를 지각하는 과정이고 가장 엄밀하게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과학도 역시 해석된 경험을 바탕으로 실재를 파악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석된 경험이 거짓이라거나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여전히 해석된 경험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주는 무한할까요? 우주의 시작은 어떻게 된 걸까요? 이 모든 에너지와 질량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현대과학의 틀은 우리에게 끝없이 엄밀한 해석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보다 더 많은 테이타 보다 더균형잡힌 자료들을 얻어내기를 요구합니다. 아마도 이 과정은 여전히 실재에 다가가는 영원한 그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