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독서모임

[독서모임] 네 가지 사랑 - 6장 자비

별아저씨의집 2008. 10. 27. 06:24
루이스는 지금껏 다룬 자연적 사랑(애정, 우정, 에로스)과 하나님의 사랑, 자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6장을 시작한다.

우선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해서 자연적 사랑을 깍아 내릴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정원이 정원사의 노력이나 햇살과 비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정원의 아름다움이 손상되지 않는것 처럼 자연적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도 비슷한 관계에 있다.

문제는 자연적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갈등을 일으킬 때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자연의 연인을 사랑할 것인가? 이러한 라이벌의 상황에서의 해결책은 첫째, 세상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적 사랑이 상처와 고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감당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이 점에서 그는 어거스틴의 견해와 의겨을 달리한다) 둘째, 하나님과 연인 둘 중 어느것을 더 사랑하는가와 같이 사랑의 강도를 묻는 질문은 별로 의미가 없다. 오히려 선택의 상황이 올 때 어느쪽을 섬기고 우선시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연인이 악마의 제안을 해 올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달콤해도 거절하고, 용납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루이스는 하나님의 자비가 주는 유익을 네 가지로 설명한다.
1)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하는 선물의 사랑이 승화된다. 도저히 사랑할 만하지 않는 대상들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부신 그 사랑에 기초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이나 혹은 내 자신이 사랑할 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2)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필요의 사랑을 승화시켜 준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물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유감스럽게 하나님께 필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유쾌하게 하나님께 필요를 구할 수 있게 해준다. 말하자면 송구스러워하는 거지가 아니라 유쾌한 거지가 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가 서로에게 베푸는 필요의 사랑을 승화시켜준다. 그래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는 것을 받아 들일수 있도록 도와준다. 불치병에 걸린 남편이 아내를 필요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아내가 베푸는 선물의 사랑을 받을수 밖에 없을 때 그 상황은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서 그 사랑을 받아 들이게 해 준다.

4)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을 향한 초자연적 감상의 사랑에 눈을 뜨게 해 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사랑을 경험함으로써 (가령, 필요을 채워주시는 선물의 사랑을 받음으로써) 한 발 더 나아가 하나님 그분 자체에 대해 감상의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감상의 사랑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루이스 자신은 자신이 그 맛을 보았는지는 하나님 만이 아신다며 슬쩍 넘어간다. 두 페이지 정도로 짧게 설명하고 넘어간 하나님에 대한 감상의 사랑은 사실 우리가 더 깨달아야 할 사랑이라고 루이스가 암시하는 듯 하다.

(필요, 선물, 감상의 사랑, 이 세가지 중에 하나님을 감상으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 그러니까 그분의 위대하심, 변하지 않는 사랑, 구속사에 담긴 위대한 모략, 창조세계에 담긴 위대한 지혜, 등등을 감상(appreciate)하면서 그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경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아이처럼 필요할 때 마다 하나님을 찾는 필요의 사랑을 넘어서서 그 분 자체를 감상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감상하는 감각이 너무나 무뎌져 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할 때는 그 위대하심이 느껴지지만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그분의 손길과 위대하심은 잘 느끼지 못한다. 삶의 모든 자리에서 그분을 감상할 수 있는 감각의 발달해야 한다. 결국 채워주시면 감사하고 안 채워주시면 삐지고 반항하는 어린아이의 신앙을 넘어서는 길은 그분의 성품과 역사를 보며 사모할 수 있는 감각이 발달될 때 가능한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