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362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늘 예배드린 세인트-마틴-필즈 교회의 정면엔 십자가 대신 시공간이 휘어진 블랙홀 같은 느낌의 현대적인 형상이 있습니다. 어그러진 시공간이 십자가를 드러낸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삶에서도 십자가가 드러날 수 있다는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솔로이스트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만드는 울림이 맘속깊이 다가옵니다. 그런 아름다운 찬송을 듣고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영혼이 휩싸여 하늘로 솟아오르는 그 경험을 결코 알지 못할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 지성적인 설교, 그리고 모두를 보듬어 앉는 찬송을 함께 부르는 포용의 자세. 왜 다르게 살아야 할까 깊은 의문이 드는 오전이었습니다 Jesus calls us to each other: vastly di..

7월의 아침

구름낀 아침 기온이 7월 답지 않게 아직은 선선합니다.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비교한 잠언 본문에 생각이 스칩니다. 창밖에선 새소리가 들려오고 방안에선 바이올린 소리가 울립니다. 학기를 마무리하고 숨돌릴 틈도 없이 출장일정을 소화하고 다음 주부터 다시 매달 출장이 이어지지만, 그래도 시차 탓에 몽롱피곤한 몸이라도 살짝 여유있는 한 주가 좋습니다. 매일 외부일정이 있긴 하지만 일과시간에 우리 연구팀의 연구진행상황도 보고 밀린 논문도 쓰지만, 그리 무리하진 않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채찍질하는 피로사회에서 선순환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지혜인지 두려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만 좀 돌리고 이제는 좀 그 순환이 깨져도 어떠냐 싶습니다. 누가 들으면 별 걱정없는 사람이 하는 배부른 소리라 하겠습니다..

박사, 축하합니다.

박사, 축하합니다. 오늘 오후엔 박사학위 논문 심사가 두 건이나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와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오전 10시 경 부터 일하기 시작한 것 같은데 점심은 빵으로 대략 떼우고 지방에서 찾아온 어느 학생을 면담하고 논문심사하며 집중적으로 일을 해서인지 무척 피곤했나 봅니다. 8년 넘게 석사, 그리고 박사과정으로 대학원에서 함께 보낸 학생이 오늘 박사가 되었습니다. 45분 동안 흠잡을데 없는 발표와 15분 동안 재밌는 질의응답을 거쳤고 그 이후에 심사의원들의 심사 질문에도 잘 답변했습니다. 6편의 논문을 출판했고 엑스선부터 전파까지 다양한 자료를 처리한 경험과 스킬들도 갖추었고 무엇보다 박사후 연구할 중요한 주제를 잡아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어리숙한 석사 ..

해석된 경험

해석된 경험 해석된 경험이란 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험이라는 것이 객관적이거나 우리의 세계관과 분리된 독립적인 어떤 정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하는 모든 감각적인 물리적 정보 혹은 데이타는 그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기온이 20도이고 남동풍이 얼마의 속도로 불고 대기의 미세먼지는 얼마고 하는 하나하나의 정보는 어쩌면 경험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 정보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으로 구성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고 그 총합을 우리는 경험이라고 부릅니다. 함께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의 표정, 눈가에 보이는 눈물, 목소리의 떨림과 그리고 말의 내용 등이 총제적으로 종합될 때, 비로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가 어떤 상태인지 우리는 인지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의 기분이..

일관성, 모순, 이중성 (2019.05.12)

일관성, 모순, 이중성 우리의 이성은 일관된 것을 좋아합니다. 남녀가 싸우는 걸 지켜보던 사람이 남자에게 당신이 옳다고 말한 뒤에 여자에게도 당신이 옳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모순된다고 다들 생각할 겁니다. 하나가 옳으면 다른 것은 틀린 것으로 보는 것이 일관성입니다. 일상의 경험도 그렇지만 과학도 일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관성의 깨짐을 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그리 일관적인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선을 좇으나 악을 행하고, 남의 잘못은 비난하지만 나의 잘못은 단순 실수로 여기는 일관되지 못한 삶이 우리의 삶입니다. 완벽하게 일관된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그런 말도 있습니다. 과학에도 일관성이 무너지는 듯한 영역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 윙어 총장은 닐스..

5월 12일 ....

별로 방해받지 않고 책 읽으며 토요일을 보낼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유학+포스닥 시절 토요일에 참 책 많이 읽었는데 한국와서 10년 쯤 내공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1주에 1권은 읽어야 영혼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데 말입니다. 이번 봄부터 토요일에는 바빠도 책읽기에 시간을 투자하자고 다짐하고 보내고 있습니다. 쌓아둔 책들 하나씩 꺼내 읽는 재미를 만끽 합니다. 인류원리로 유명한 존 베로의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천체물리를 하기도 했지만 수학자인 그가 풀어내는 무한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워 홀딱 읽어버렸습니다. 대학 시절에 수학과에서 패러독스 과목을 청강하며 가졌던 탐구심이 다시 부활하는 듯 합니다. 무한은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잠재적 무한과 현실적 무한으로 구분하던 시절도 있지만, 수학에서..

5월 19일 ....

너무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졌다가 일어났습니다. 점심도 대략 거르고 강의하러 갔다가 1시간 걸려 집에 와서는 저녁먹고 잠이 들었네요. 체력이 예전같진 않나 봅니다. 오늘 성복중앙교회는 뚜렷한 기억으로 남을 듯 합니다. 작년에 고려대에서 열린 베리타스 포럼을 지원하면서 포럼에 참석하셨던 담임목사님이 오늘 제가 입고 간 옷을 알아보시더군요 ^^ 고려대 앞에 자리잡은 교회인데 학원사역에 대해 깊은 관심과 비젼으로 섬기는 교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시간 반 강의 후에 이어진 청년들 질문도 좋았습니다. 사회를 맡은 분도 준비를 많이 하신 듯 감각있게 질의응답 시간을 진행했습니다. 보통 교회에서 강연하면 질의응답 시간이 짜임새가 없는 경우들이 있는데, 오늘 같은 진행이라면 제가 강의시간을 줄이고 질의응답 시간을 늘..

제임스 스미스 강연

제임스 스미스의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종강예배라 찬양을 하다보니 캠퍼스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찬양을 참 오랜만에 한다 싶었습니다. 종종 가야할 듯 합니다. 제임스 스미스는 전형적인 미국인 스타일로 그러나 철학자답게 분석적인 방식으로 꽤나 긴 문장을 구상하며 개념적인 깊이를 담아 다채롭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원고는 이미 써두었을테니 문장 하나하나가 이미 명료하고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있었을터라, 들으면서 책을 읽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구어적 느낌을 살려 풀어내는 스타일이 전형적인 (강의 잘하는) 학자들의 강연다왔습니다. You are what you love라는 제목의 강연이었지만 제 느낌에는 you are what you do였습니다. 우리가 욕망하고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내가 누구인지 결정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예수의 가르침은 참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대학시절 성경을 제대로 읽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만났던 본문들은, 날 때 부터 교회에서 자란 셈이라 너무나도 익숙하던 구절들을 새롭게 보게 해주었고 무한한 질문의 연속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설교에서 두려움에 대해 들으며 그 고민이 떠올랐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시작된 그 고민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하는 반감같은 혹은 자조적인 댓구가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무엇을 먹을지 마실지 입을지 고민하지 말라는 그 가르침은 매일 끼니를 걱정하고 마실 물을 걱정해야 했던 갈릴리 사람들이나 예수를 좇아 ..

어떤바람 - 서귀포시 사계리

어떤바람. 아담한 까페와 책방, 그리고 강의/문화 공간을 갖춘 이런 곳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참 오래되었습니다. 막상 이렇게 아기자기한 공간을 보니 흐뭇합니다. 이름도 참 잘 지었네요.^^ 제주도 삼방산 앞에 있는 마을에서 지인이 하는 책방까페를 방문했습니다. 공사중일 때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많은 분들이 찾는 공간이 되었네요. 따뜻한 느낌의 인테리어도 좋습니다. 제 책도 기증해야 겠습니다 (팔릴까 몰라~^^) 네모난 창이 좋습니다. 책모임하기도 딱이다 싶었는데, 벌써 북클럽도 진행된다는군요. 제주에 가면 한번씩 들러서 쉬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광고모델로, 네, 자기도 모르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