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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신 - 앤소니 플루

별아저씨의집 2018. 11. 4. 20:45
존재하는 신

앤소니 플루의 책을 읽었습니다. 11년 전에 출판되었고 한국어 번역도 2011년에 나왔으니 벌써 오래된 책입니다. 읽고나니, 다행히 그동안 그리 많은 걸 놓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논지는 이미 익숙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거물급 철학자였던 그는 무신론 철학을 체계적으로 세운 것으로 평가되나 봅니다. [신학과 위증성], [신과 철학], [무신론 추정] 등의 대표적 저작을 통해서 그는 유신론의 주장처럼 천 가지 단서를 다는 논증은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필두로 신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점으로 유신론을 비판했고 버트란트 러셀의 우주 주전자로 알려진 것처럼,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의 책임이 유신론자들에게 있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논증했습니다.

그의 과거의 입장은 '무신론 추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의 존재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는 한 무신론이 옳다고 추정하는 것이죠. 범죄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무죄로 보는 무죄 추정의 법칙과 비슷합니다. 러셀을 따라 신존재 증명의 책임이 유신론자들에게 있다는 그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노년의 그가 무신론을 버리고 유신론자가 되었다는 뉴스는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저도 그 즈음에 기사들을 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양한 추측이 쏟아졌지만 주로 죽음이 가까와진 그의 노년기를 지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흥미롭게도 플루는 이 책에서 자신이 유신론으로 돌아 선 이유가 철저하게 이성의 인도를 따랐음을 언급합니다. 증거가 이끄는 대로 지성적 여정을 끝까지 추구한 결과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의 여정은 C.S. 루이스나 프란시스 콜린스, 혹은 알리스터 맥그라스와도 비슷합니다. 이들은 지적 탐구의 결과 무신론을 버리게 된 사람들입니다. 고통과 악이 존재하는 세상을 볼 때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서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듯 이들의 무신론도 사실 비슷합니다.

그러나 정직한 탐구와 포기하지 않는 이성적 추구를 통해 신의 존재로 다다들 수 있었다는 그 평생에 걸친 여정에 찬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그는 어떤 기적에 대한 경험이나 마음의 뜨거워짐이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것이 아니라며 철저히 선을 긋습니다. 자신의 여정은 정확하게 자연신학적이라는 것이지요.

자연신학은 이성적 추론으로 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태도를 갖습니다. 물론 지성적 작업을 통해 신의 존재를 인정해도 과연 그 신이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이 책은 플루의 자연신학적 추구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부록에서 톰 라이트의 글을 실어 신의 계시와 예수의 역사성, 그리고 부활을 다루며 성서신학과 연결하며 자신이 발견한 신을 기독교의 신과 연관시킵니다.

플루의 신존재 논증은 3가지 입니다. 첫째는 자연세계의 합리성에 대한 논증입니다. 쉽게 말하면 어떻게 우주가 합리적일 수 있는가, 자연법칙의 기원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무신론은 답할 수 없다는 것이죠. 과학이 답을 할 수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은 합리성의 구체적인 현상과 내용들을 찾아내고 합리성의 정도를 보여줄 뿐입니다.

둘째는 의식과 자아를 가진 인간과 같은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무신론이 답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생물진화와 다르게 화학진화에 관한 엄밀한 설명의 부재를 지적합니다. 목표지향적이고 자기복제하는 생명체들의 기원, 의도와 자아를 갖는 인간의 존재를 무신론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한한 지성을 갖춘 정신을 가정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물질의 세계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그 기원에 대한 합당한 설명을 요구합니다. 결국 무신론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 없고,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신을 선택하거나 스스로 존재하는 물질세계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선택의 상황에서 플루는 유신론에 손을 들어 줍니다.

이 3가지는 그렇게 새로운 관점은 아닙니다. 지난 5월 베리타스포럼에서 강영안 교수님과 함께 나누었던 왜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주제의 강연 내용에서 저도 비슷한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합리성과 존재의 의미는 무신론과 유신론을 비교할 때 유신론에 무게를 둘 강력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플루는 이런 논증들이 유신론을 증명한다는 식의 뉴앙스를 풍기지는 않습니다. 전통적인 유신론 논증인 목적론 논증, 설계 논증과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제가 읽기로는 플루는 여전히 추정의 원칙을 따릅니다.

과학적 내용도 당연히 많이 포함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적설계론자들처럼 신존재 논증을 과학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그는 명확하게 이 점들이 철학적 논증이라고 밝힙니다.

철학적 논증이 신을 증명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유신론과 무신론은 어떤 의미에서 함께 놓고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le 이라고 하지요.

유신론과 무신론을 각각 독립적으로 받아들여 볼 때 얼마만큼 설득력 있는지를 비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신론은 어떤 의미에서 그 자체를 입증하지 않습니다. 신존재가 입증되지 않는 한 추정의 원칙에서 무신론을 수용합니다. 그러나 플루는 예전과 다르게 유신론의 근거들이 설득력있다고, 특히 위의 3가지 점을 통해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고 유신론 추정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입니다.

종교철학에서 다루는 신존재와 관련하여 20세 전반기의 논리실증주의를 넘어 20세기 후반에는 분석철학에 바통이 넘어갔음에도, 도킨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무신론자들은 여전히 논리실증주의의 헛물을 켜고 있다고 플루는 지적합니다.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과학자들은 형편없는 철학자들이다라고.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아인슈타인에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과학자들은 흔히 철학공부가 짧습니다. 플루가 슬쩍 약올리는 듯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그도 과학자들의 해석에 기대는 면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정직한 작업이라 생각됩니다.

200페이지 밖에 안되는 간단한 논리전개를 읽으니 좀 만족이 안됩니다. 그의 무신론 저작들을 좀더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그 강력한 무신론 논증들을 스스로 어떻게 뒤집었는지 좀더 깊이 살피는 공부가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