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는 적대관계이며 둘 사이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있어왔다는 통념은 19세기 중후반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퍼져있는 견해이다.
하지만, 그런 견해는 엄밀한 과학사적 증거들에 기초해 있기보다는 당대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요구되었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된 관점이라는 것이 최근 과학사가들의 견해라고 한다. 가령, 과학활동을 종교적 영향에서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가 적대적이라는 것을 부각시킴으로써, 과학의 독립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의제에 사회적 동의를 효과적으로 끌어낼 수가 있다.
'The Creationists (창조론자들)'이라는 책으로 익숙한 로널드 넘버스는 과학과 종교를 적대적 관계로 보는 입장에서 흔히 회자되는 25가지의 잘못된 통념들을 바로 잡는 책을 엮었다.
25명의 과학사가들이 10페이지 안팎으로 한가지 씩 주제를 다루는 이 책의 제목은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이다. 지난 7월에 출판되었다.
서점에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을 집어들고 제목을 살펴보니 읽고싶은 구미가 마구 당겼다. 몇가지만 뽑아 본다면,
중세교회는 과학의 걸림돌일 뿐이었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근대과학으로 인한 최초의 순교자였다?
과학혁명이 과학을 종교에서 해방시켰다?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론이 신의 필요성을 제거했다?
다윈의 진화론이 자연신학을 파괴했다?
양자물리학은 자유의지 교리를 증명했다?
등등이다. 25가지의 제목이 전부 의문형인데 흔히 의문형의 제목을 달고 있는 글의 내용은 '아니다'라는 답변을 제시한다. 그러니까 위의 제목들에 대한 답은 전부 NO가 되겠다. 나머지 제목들도 흥미를 돋구는 제목들이다. 너댓편을 읽어보니 상당히 흥미롭다. 최근 연구를 반영한 과학사가들의 견해들을 접할 수 있는 대목들이 꽤 있다.
흔히 기독교에 의해 과학이 탄압을 받았다거나 혹은 거꾸로 기독교가 과학을 창조했다와 같은 극단적인 주장들이 상식이 되어버린 현대에 과학사가들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잘못된 통념들을 바로잡아 보는 것이 꽤나 유익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