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산타 바바라

별아저씨의집 2010. 1. 11. 06:57
내 좋아하던 북극성 커피점 창밖 벤치에 70은 가까이 되어 보이는 두 남녀가 손을 꼭잡고 있다. 스테이트 거리를 천천히 걷다가 아마도 잠시 숨을 돌리는 듯. 꼭 잡은 두손이 마치 그들의 인생여정을 보여주는 듯 하다. 여행객처럼 보이는 그들은 다시 일어나서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눈부신 바다위에 surfer들이 유유히 출렁인다. 큰 파도를 기다리는 그들의 마음은 바다의 작은 일렁거림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남쪽으로 드리워진 강한 햇살이 물결위로 반사된다. 아름답다. surfer들을 지켜보는 한 할머니는 젊은 시절 생각이라도 하는걸까? 

아침에 잠시 드리웠던 구름이 걷히고 눈부히 산타 바바라의 날씨가 펼쳐진다. 조깅과 워킹 그리고 싸이클링을 하는 자들이 유유히 굴러가는 자동차들과 더불어 한폭의 그림을 그린다. 항구에 떠있는 요트들은 주인이 찾아주기를 기다린채 여유있는 낮잠을 자고 있다. 

긴팔 옷이 덥다. 여기 1월이 이렇게 더웠던가? 이곳에서 인생의 짧은 한 장을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 작은 도시의 매력에 잠시 잠겨본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쉴틈없이 달려온 지난 한 학기, 새로운 삶을 음미해 볼수도 없이 빠르게 흘러간 시간들. 여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공간에서, 모든 이에게 낯선자로 이방인으로, 한이틀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본다. 물론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된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다.  나와 내가 아닌 것들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명상이라고 부를까?

그녀가 어느 spiritual community에 조인한 것은 벌써 4-5년이 전이었다고 한다. 처음 그녀가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만났을때 그녀는 그들에게 반했다. 누군가에 반한다는 것, 기억하는가?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끌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놀라운 경험이다. 그녀가 그랬다. 그녀는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런 멋진 사람들을 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녀가 말한 매력은 자유함이었다. 욕망과 잘난체와 부 등등. 그렇게 사람을 종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들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 아, 오늘날 그런 매력적인 사람들은 어디있단 말인가? 예수가 그렇지 않았을까? 그의 제자들은 그와의 만남에서 즉각적으로 끌리지 않았을까? 나는 그런 사람일까? 그녀는 자신이 조인한 것이 종교는 아니라고 했다. 그저 현실과 자신의 참모습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그렇다. 그것은 하나의 도였다. 명상과 자기훈련을 통해 성숙하는 것. 기독교도 어떤 면에서 하나의 도가 아닌가?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들어가는 도. 그러나 축복은 남아있지만 도는 보이지 않는다. 잠깐의 만남으로도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즉각적인 끌림을 느끼게 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렇다. 인격적 내공은 감출수 없는 법이다. 

이름을 바꾸게 된 과정을 듣게 된 그 저녁식탁의 대화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게 심한 자괴감을 몰고 왔다. 도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나는 도를 따르고 있는가? 오랜만에 간 캘보리 채플에서 설교중에 이런 표현이 나왔다. Too saved to truly enjoy sins. 결국, 죽지 않고 남아있는 죄된 본성이 문제의 근원인가. 

서울이 무척 춥다고 한다. 아름답고 쾌적한 산타바바라와 춥고 복잡한 서울은 어떤 실타래로 어어져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