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가 흩뿌리는 촉촉한 이른 아침
부지런히 지저귀는 새소리가 고용한 동네를 깨웁니다.
창밖 노란 종탑 위로 십자가가 보이고 여전히 잠자는 듯한 2층집들 사이로
차들도 쉬고 있는 길을 내려다보며 시편을 읽습니다.
저 엹게 낀 구름 뒤에는 해가 있고 별이 있겠습니다.
지구 반대쪽으로 가버린 달도 해와 별과 함께 변함없이 빛나고 있습니다.
비록 잠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하늘 위의 하늘들, 하늘 위에 있는 물들아, 찬양하여라.
야훼의 명령으로 생겨났으니, 그의 이름 찬양하여라.
지정해 주신 자리 길이 지키어라. (148편)
시편기자가 천문학을 배웠더라면 은하들과 블랙홀들도 찬양의 대열에
끌어냈을까요. 비행기에서 본 '이집트의 신들'이란 영화 장면이 쓸쩍 겹쳐집니다.
새소리를 알아들을 뻔 하는 중에 교회 종소리가 들립니다.
7시라는 외침일텐데, 두번째 종소리는 길게도 이어집니다.
늦잠을 자는 누군가는 주일 아침의 울림을 살짝 미워할 수도 있겠습니다.
열어둔 창문으로 시원스레 찬 공기가 찾아옵니다.
왠지 낯설지 않은 이 아침은 대학시절 아침마다 캠퍼스 어느 벤치에서 읽던 시편의 기억을 데려옵니다. 큰나무, 나뭇잎, 흙, 바람, 아침햇살, 새소리, 다람쥐...
하루가 시작되지 않은 시간에 당신을 만나고 그리고 나를 만나면
부조리와 불합리의 세상에 막 눈을 뜬 젊음의 방황은 날마다 어렴풋한 좌표를 찾았을 수 있었고 탐욕스런 인간사회를 넘어서는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서 당신과 우주와 나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여기 이곳. 바람소리 빗소리 새소리로 들려주는 당신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임무를 기다리는 전사가 아니라 고향에서 가족을 재회하는 여행자처럼
언어에 담기지 않는 희노애락의 그 이야기를 차분히 나눠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