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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창조론자들 3번째 - 젊은지구론 창조과학이 만들어질 때 지질학자는 없었다

별아저씨의집 2016. 6. 10. 21:47
#창조론자들 읽기 3

<젊은지구론 창조과학이 만들어질 때 지질학자는 없었다>


넘버스의 창조론자들 16장까지 끝냈습니다. 여기까지가 초판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이 책에 나온 창조론자들의 역사는 생물학보다 지질학이 중심이 됩니다. 의아하지요? 생물학 내용은 별로 안나오고 주로 지질학 내용이 등장하니까요.


그 이유는 실제로 창조론자들의 활동이 생물학보다 지질학을 중심으로 흘러왔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의 경우, 생물학자들이 설명하는 인과관계 대신에 특별한 방법, 그러니까 특별창조를 주장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지질학의 경우, 화석, 지층, 빙하 등 어디서나 쉽게 발견되는 증거들이 가리키는 지구의 오래된 연대를 결코 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의 자연선택, 유전, 변이 등등은 쉽게 부정하면서 신의 특별창조라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지질학은 결코 그런 식의 회피가 쉽지 않았습니다. 암석의 용어나 지질시대 자체가 이미 지질학이라는 학문이 지구의 긴 역사를 반영하고 있거든요 (635페이지)

그래서 1920년대에 안식교인 프라이스가 만든 홍수지질학을 창조과학으로 부활시킨 헨리 모리스와 창조론자들의 활동은 주류 지질학 대신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는데 초점이 맞춰집니다.

생물진화는 생물학의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그냥 부정하면 되지만, 지질학의 경우에는 지구의 긴 연대를 부정하고 특별창조를 주장하려고 해도 확연히 증거로 남아있는 지층, 화석, 빙하 등을 설명할 방법을 제시해야 했던 것이죠.

그래서 홍수지질학이 사실 창조과학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됩니다. 지난 번 글에 썼듯이, 창세기에 대한 정통적인 해석은 간격이론 혹은 날-시대 이론이었습니다. 18-19세기에 걸친 지질학의 발전을 통해서 많은 기독교인들은 지구의 역사가 길다는 걸 알았고 하나님이 지구를 오래 전에 창조하셨다고 이해했습니다.

1960년대가 되면 창조과학의 창시자인 모리스는 간격이론이나 날-시대 이론을 배제하고 젊은 지구론을 교리화 합니다. 6천년 전의 창조를 믿지 않는 관점을 배격하고 젊은 지구론을 절대화한 것이죠.

창조과학은 홍수지질학으로 지층이나 화석을 설명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전지구를 덮는 대격변이었고 이때 동식물이 몰살하면서 화석이 만들어졌고 지층들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죠. 현재 창조과학회는 여전히 이렇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 대학교육도 제대로 못받은 안식교인이 만든 홍수지질학은 전문 지질학자들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창조론자들의 설명은 지질학을 제대로 못 배운 사람들이 끼워 맞춘 이야기에 불과했으니까요.

넘버스는 과학계에서 철저히 무시된 모리스의 창조과학과 홍수지질학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보여줍니다.

1962년에 휴스턴에서 열린 지질학회에 초대된 모리스는 5백명의 청중 앞에서 강연하는 기회를 얻습니다. 학회의 회장은 모리스를 소개하며 모리스가 하는 주장에 대해 자신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고 간청하기도 했답니다. 그 강연에서 모리스가 주류 지질학을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청중은 숨죽인 듯이 침묵했습니다. 모리스의 주장에 동의되어서가 아니라, 그의 주장이 너무나 황당해서 할 말을 잊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95 페이지)

창조과학회는 홍수지질학으로 지질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수십킬로미터에 달하는 퇴적암 층이나 빙하시대가 여러번 있었다는 증거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증거들은 반대로 얘기합니다. 한번의 노아홍수로 그렇게 되었다는 주장은 지질학자들에게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창조론자들도 스스로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공룡과 인간의 발자국이 동시에 찍혔다는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화석을 가지고 주류 지질학을 공격했지만, 대홍수가 나서 빠져죽어가는 인간과 공룡이 어떻게 발자국을 화석으로 남겼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가 없었지요. 그들의 전문성은 그 정도로 허약했습니다.

변변한 지질학자 한 명도 없었던 창조과학회에 지질학자를 모셔오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심지어 근본주의나 안식교 내에서도 홍수지질학을 믿는 지질학자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창조과학회를 만든 주 멤버들 사이에서도 생물진화를 반대한다는 것 이외에는 지구의 연대, 홍수지질학의 위상 그리고 성경해석에 대해서도 일치된 견해가 없었습니다 (539).

젊은 지구를 교리처럼 믿은 모리스는 지질학 박사를 받은 창조과학회 멤버를 고대했지만, 기대했던 후배들은 지질학을 제대로 공부하다가 홍수지질학을 버립니다. 특히 데이비스 영과 같은 한때 모리스의 영향을 받았던 젊은이는 지질학자가 되고 나서는 홍수지질학을 박살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639)

1920년대 조지 프라이스의 시대부터 1950년대 모리스가 등장한 시대, 그리고 창조과학이 퍼지기 시작한 1960년대를 거치면서, 홍수지질학 진영에 지질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처음 생긴 것은 1979년입니다.(647페이지). 홍수지질학자들은 환호했지만 그러나 이 말은 홍수지질학이 만들어지고 다음어지고 창조과학에 사용되고 널리 전파될 때까지 지질학자 한명 없는 비전문가들이 홍수지질학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제대로된 지질학자 한 명 없이 만들어진 창조과학과 홍수지질학이 전문 지질학자들에게 비웃음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