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과학칼럼 & 과학에세이

[매경 사이언스플라자] 50년 연구 빛 본 노벨물리학상

별아저씨의집 2013. 10. 16. 06:52

매경 사이언스플라자 2013년 10월 16일


 50년 연구 빛 본 노벨물리학상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해마다 단풍과 함께 가을이 익어가는 이맘때면 인생의 열매에 대한 상념이 늘어난다. 지난주에는 각 분야 노벨상 소식이 들려왔고 올해 물리학상은 힉스입자를 연구한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피터 힉스에게 수여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들 연구가 1964년 일이었으니 이번 노벨물리학상은 입자물리학 50년의 열매를 돌아보게 한 소식이다. 


신의 입자로 대중에게 알려진 힉스입자는 힉스장을 통해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힉스와 앙글레르를 비롯한 몇몇 물리학자들이 제안한 힉스장 이론은 그 당시 입자물리학 이론이 부딪혔던 한계를 극복하면서 입자가 질량을 갖는 이유를 모순 없이 설명했고 그 결과 입자물리학 표준모델의 핵심이 됐다. 이 모델은 20세기 후반에 쿼크 등 여러 입자들이 발견되면서 점점 공고해졌다. 그러나 예측된 힉스입자는 지난 반세기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힉스입자 관련 연구자에게 수여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 이유는 지난해부터 유럽입자물리연구소 거대강입자가속기 실험에서 힉스입자에 대한 증거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주가 창조되던 시점에 입자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실험하려면 빅뱅 시점과 같은 조건을 구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 거대입자가속기가 필요했던 이유였고 오랜 실험을 거쳐 드디어 힉스입자로 보이는 입자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작년에 뉴스를 탔다. 약 50년 만에 힉스입자가 실험을 통해 검증됨으로써 입자물리학 표준모델이 일단락되는 성과였다. 

노벨물리학상이 힉스입자를 예측한 팀에 수여될지 혹은 실험으로 검증한 팀에 수여될지 관심을 끌기도 했다. 결국 힉스입자를 제안한 힉스와 앙글레르가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노벨위원회 심사위원은 실험으로 힉스입자를 검증한 연구팀이 노벨상에서 제외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과학에서 이론적 예측과 실험적 검증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이루어진 이론연구는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하다. 그러나 많은 이론연구들이 오류로 판명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험연구도 중요하다. 실험연구에도 만만치 않은 아이디어와 노력이 필요하기에 이론과 실험 사이에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다. 

이론연구와 실험ㆍ관측연구는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새의 양 날개처럼 과학을 이끈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도 실험을 통한 입증이나 관측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면 완성된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 수학과 다른 이유는 바로 경험적 데이터의 중요성 때문이다. 때로는 우연한 발견이 새로운 이론을 끌어내기도 하고,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훌륭한 이론이 차후에 실험으로 검증되기도 한다. 과학사에는 이론과 실험 간에 밀고당기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입자 발견으로 물질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막을 내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제 시작이다. 입자물리학 표준모델이 다루는 물질은 화학시간에 배우는 원소들에 해당되며 이 물질은 전체 우주에서 약 5%를 차지할 뿐이다. 그러나 우주에서 약 70%를 차지하는 암흑에너지나 2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초보 단계에 있으며 우주의 기원은 아직도 심오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노벨상 수상 소감을 묻자 힉스는 기초과학 분야에 노벨상이 수여되었다며 기초과학 연구가 중요하다는 인식 전환을 기대했다. 과학을 경제의 도구로만 보는 사람들은 신의 입자 발견이 창조경제에는 어떤 유익을 줄까라는 엉뚱한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힉스가 바라는 것이 많은 기초과학자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