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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사이언스플라자] 블랙홀의 식사 -- 우연은 공짜가 아니다.

별아저씨의집 2013. 3. 21. 10:26

[매경 사이언스플라자]


블랙홀의 식사 -- 우연은 공짜가 아니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학은 발견의 과정이다. 인간의 실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준 전기나 플라스틱, 페니실린 등과 같은 발견에서부터,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거나 우주가 팽창한다는 지식처럼 인류의 세계관을 뒤바꾼 발견에 이르기까지 과학은 다양한 발견의 역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세계는 새로운 현상과 새로운 원리의 무한한 근원이며 과학은 발견을 통해 인류의 지성을 계속 풍요롭게 할 것이다. 

2013년은 최초로 블랙홀의 위치가 발견된 지 50년이 되는 해이면서 동시에 블랙홀의 식사 장면을 발견 혹은 목격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3년 3월, 캘리포니아 공대의 마틴 슈미트는 한 퀘이사(준성 전파원)의 거리 측정에 성공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매우 강한 전파를 내지만 별처럼 보였던 이 정체불명의 광원은 준성 혹은 퀘이사로 불렸는데 그의 연구에 의하면 이 퀘이사는 광속으로 25억년을 가야 하는 먼 우주에서 빛나고 있었다. 실제 밝기를 따지면 태양보다 1조배가량이나 더 많은 에너지를 내는 미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3년 후 케임브리지 대학의 린덴 벨이 제안한 대로 그 정체는 바로 가스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었다. 슈미트의 발견은 블랙홀에 대한 연구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블랙홀이 가스를 집어삼키는 과정은 얼마나 역동적일까?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그 과정을 구현하며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진귀한 현상을 지켜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천문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 현상은 2013년 하반기에 우리 은하 중심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마틴 슈미트 이후 블랙홀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 이어지면서 1990년대 초에는 우리 은하 중심에도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이 블랙홀은 수많은 다른 블랙홀들과 달리 자세한 관측이 가능한 훌륭한 실험실인 셈이다. 이 블랙홀의 질량이 태양 400만개를 합한 정도라는 것도 밝혀졌다. 

특히 올해는 이 블랙홀 주변에서 경이로운 현상이 관측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구보다 몇 배 더 무거운 가스덩어리가 블랙홀 쪽으로 현재 빠르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혜성이 태양으로 날아가듯 블랙홀을 향해 끌려가는 이 가스덩어리의 속도는 현재 초속 2500㎞이다. 점점 가속되고 있는 이 가스덩어리는 올 9월이면 블랙홀에 근접한다. 엄청난 중력이 작용하는 블랙홀 근처로 이동하면서 국수처럼 길게 늘어진 가스 중 일부가 아마도 블랙홀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블랙홀이 천천히 가스를 집어삼키는 식사 현장을 목격하기 위해 전 세계의 대형 관측시설들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우주의 괴물 같은 블랙홀이 가스를 유입하는 과정에 대한 궁금증은 수많은 과학자들을 목마르게 한다. 김연아 선수의 세계선수권 대회를 보듯, 자연현상이 주는 감동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감동을 넘어 새롭게 발견될 현상과 원리들이야말로 과학자들이 기다리는 보물이다. 

발견은 종종 우연히 그리고 순식간에 일어난다. 50년이 지나 명예교수가 된 슈미트는 최근 인터뷰에서 퀘이사 발견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었지만 한 달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나온 결과라고 회상했다. 

우연은 공짜가 아니다. 우연은 불가능한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가 실현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우연을 의도적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결국 우연은 가능성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에게 돌아간다. 바로 우연을 기다리기 보다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과학사를 수놓은 수많은 발견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마땅한` 우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