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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서울대법인화법 개폐 - 조국 교수

별아저씨의집 2011. 6. 8. 00:45

서울대 법인화 문제가 학생들의 본부건물 점거농성으로 이슈로 떠올랐다.

학교가 시끄럽다.

한쪽에서는 행정마비 등등을 이유로 학생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또 한쪽에서는 서울대 법인화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서울대법인화법을 다루는 상임위에서 논의되지도 못한 법이 지난 연말에 날치기 통과 과정에서 다른 법들과 함께 뚝딱 통과되었으니 절차상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통과된 법이니 법적 효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법인화의 문제가 무엇인지 반대의 이유를 짚어보아야 한다. 학생들이 2천명 가까이 모여 투표를 통해 본부건물 점거를 지지했다니 적어도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아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조국 교수의 글을 옮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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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서울대법인화법 개폐

                         -조국

서울대생들이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하며 총장실 등 본부건물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근래까지 정치권은 선거승리에 여념이 없어 서울대법인화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서울대 당국도 서울대법인화법 통과 이후 법인화 반대론의 주장을 경청하고 수용하는데 소극적이었다. 그리하여 울분에 찬 학생들은 비상총회를 열고 본부점거라는 실정법 위반을 감행했다.

 서울대법인화법은 절차와 내용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법은 작년 말 해당 상임위에서의 토론과 합의도 없이 직권 상정되어 한나라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되었다. 서울대는 물론 향후 전국 국립대의 명운을 좌우하게 될 법을 이런 식으로 만들다니, 대학구성원으로서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대학의 자치’라는 헌법적 원칙이 훼손되고, 수익 중심의 대학운영이 이루어질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먼저 최고 의사결정체인 이사회 구성과 예산확보 등 학교 운영의 대부분이 정부에 종속된다. 서울대 총장 자리가 사실상 집권정파의 논공행상 자리가 되고, 이렇게 임명된 총장은 단과대 학장을 선거 없이 지명할 수 있기에 대학이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상명하복 피라미드 체제로 운영될 우려가 크다. 또한 법인화된 서울대가 수익위주로 운영되어 기초학문이 홀대받고, 등록금은 사립대 수준으로 상승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학내외에서 학생들의 행동은 불법이니 강제해산, 학사징계, 형사처벌,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강경론은 사태의 근본원인을 외면하고 실정법 위반만 문제로 삼는 것이기에 올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없으며, 오히려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권당’(捲堂)과 ‘공관’(空館)이라는 집단실력행사를 벌이는 것이 허용되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한편 농성중인 학생들은 절제된 태도를 견지할 것을 부탁한다. 사소한 일탈도 학내외의 맹비난을 초래할 것이며 그 경우 농성의 문제의식은 묻혀버릴 수 있다. 1991년 노태우 정권시절 총리 취임을 앞둔 정원식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달걀투척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유념해야 한다. 정 교수가 장관시절 전교조 탄압의 주역이었다는 점은 사라지고, 학생들에게는 ‘패륜아’라는 낙인이 씌워졌으며 학생운동권은 상당 기간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번 서울대 본부 점거농성은 서울대법인화법 개폐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서울대법인화법은 일본식 법인화법을 모델로 하여 정부의 입김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악법’이다. 여야 정치권은 늦어도 9월 정기국회에서 이 법의 개폐에 착수해야 한다.

 현재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 체제에는 바뀌어야 점이 많다.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국제경쟁력을 모두 강화하고,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조직의 방만함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법인화하지 않은 채 현재 체제를 개선하는 방법, 독일처럼 국립대를 공법인(公法人)으로 바꾸는 방법, 미국 주립대 법인처럼 이사회 구성을 민주화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 모두를 열어놓고 검토하여 매듭지어야 한다. 정치권의 잘못으로 인한 부담을 대학이 지는 사태는 신속히 끝나야 한다.

 한편 서울대 본부는 급박하게 법인화를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법이 통과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대응으로는 부족하다. 법인화 반대파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공식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만나고 또 만나는 것이다. 조선시대 ‘권당’이나 ‘공관’이 일어나면 조정은 유생들에게 ‘개유사’(開諭使)를 보냈다. 학교와 학생 양측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다고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 농성 조기종료를 위해서 어떠한 합의사항을 안출(案出)해야 하는지 각자 고민하고 대화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강경론을 고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대학의 자치’ 정신을 존중하는 용감한 타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