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과도기_이야기] 42번째 - 비유는 사실을 허구로 만들지 않는다.

별아저씨의집 2018. 8. 13. 00:54
#과도기_이야기 42번째 비유는 사실을 허구로 만들지 않는다.


창세기 1장의 6일창조는 창조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신학적 설명입니다. 하나님이 6일이라는 기간동안 모든 걸 창조했다는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인간의 한 주 간의 노동에 비유해서 창조의 역사를 6일이라는 프레임에 담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렇게 설명하면 이런 질문이 들어옵니다. 그럼 창세기 1장은 다 비유일 뿐이고 디테일은 다 거짓이 되는 거냐고?

흑백논리로 실재를 판단하려는 태도는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양자택일식의 단순논리는 실재가 갖는 다양한 색깔을 전혀 보지 못하게 할 뿐입니다.

[과.도.기] 책에 이런 내용을 넣었습니다. --------일본 동북부 지방에 쓰나미가 와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사망하고 한 사람의 생존자가 남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쓰나미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기록을 남겼다. "하늘까지 닿는 쓰나미가 덮쳐 집과 자동차와 사람들을 순식간에 쓸고 내려갔다"고.

쓰나미를 연구하는 해양학자가 이 기록을 보았다. 이 기록은 과학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나미가 하늘까지 닿았다니, 대기권 수십킬로미터까지 올라갔다는 말인가? 유속에 한계가 있는데 집과 자동차와 사람들을 순식간에 쓸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기록은 과학적 사실과 다르니 지어낸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해양학자는 그렇게 결론내렸다.

생존자의 기록이 과학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담고있지 않다고 해서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허구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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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가 기록을 남긴 이유는 해양학자에게 쓰나미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쓰나미의 무서운 경험을 알리기 위함일 뿐입니다. 그런데 과학적 설명이 틀렸다고 해서, 비유적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쓰나미의 경험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허구라고 한다면 무척 허탈해집니다.

창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다양한 문학적 표현들이 들어있고 고대근동지역 사람들이 가진 상식과 세계관이 담겨있습니다. 그런 비유적 표현이나 유비나 혹은 고대근동의 상식이 담겨있다고 해서, 창세기를 그저 소설이라고 결론내린다면 참 어이없는 일이 됩니다.

창세기의 1차 독자였던 히브리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창세기가 기록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가 쓰였고 개념이 담겼고 그들의 우주관이 담깁니다. 창세기의 목적이 우주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누가 창조주이며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함이라면, 비유를 비롯한 문학적 표현이 사용될 수 있고, 현대과학과는 맞지않는 표현이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유나 고대의 상식이나 과학과는 거리가 먼 표현들이 담겨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창조는 없었던 거야라고 결론 내린다면, 쓰나미에 대한 기록이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해서 쓰나미는 없었던거야라고 결론내리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쓰나미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유가 해양학자에게 과학적 정보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나미의 경험을 전하기 위함인 것처럼, 창세기는 과학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누가 창조주이며 왜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모든 기록은 그 기록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며 읽어야 합니다.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관점에서 읽으면 그 기록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됩니다.

그러니, 단순 흑백논리로, 창세기의 모든 표현이 문자적 사실이라는 극단적 문자주의를 고집하거나, 반대로 창세기는 과학적으로 맞지 않으니 허구에 불과하다는 뚱딴지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