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무크따_이야기] 23번째 젊은지구론도 진화적 창조도 나는 싫다?

별아저씨의집 2017. 3. 26. 21:54
#무크따_이야기 23번째 - 젊은지구론도 진화적 창조도 나는 싫다?

요즘 (2015년 2월) 젊은지구론 논쟁에 대해서 의견을 표명하는 분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그 글들을 보니 몇가지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제가 신문 칼럼 등을 통해서 젊은지구론 비판을 제기했으니, 아마도 논쟁의 중심 근처 어디에 제가 있는 듯 합니다.

1. 우선 눈에 들어온 내용은 양비론입니다. 젊은지구론이 과학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진화창조론도 과학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주장이죠. 이런 식의 주장은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신학적인 면이 아니라 과학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지구연대에 관한 과학적 결론이 나온지는 이미 백 년이나 되었지만, 그에 비하면 생물진화를 다루는 과학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문제가 있다는 식의 양비론은 문제의 경중을 완전히 오도하는 셈입니다. 특히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분들이 이런 견해를 표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아직 양자역학에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해서 양자역학도 틀렸고, 그리고 동시에 천동설도 틀렸다고 양비론을 제기한다면, 과학자들이 보기엔 좀 우스운 꼴이 됩니다.

2. 둘째, 젊은지구론과 진화창조 입장이 서로 싸우지 말고 대화하면서 평화롭게 가야한다는 주장입니다. 글쎄요. 싸우는 것과 대화하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모르겠지만, 과학에 대한 옳고 그름, 성경 해석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고 논하는 것을 굳이 싸움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싸움을 해야하지요. 하지만 젊은지구론이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건 싸움을 거는 게 아닙니다.

과학자는 과학을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역할과 소명입니다. 반대로, 저를 기독교인이 아닌 듯 비판하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은 대화하자는 의도로 들리지 않습니다. 너 예수 믿는거 맞어? 이렇게 공격하면 싸움이지요. 그러나 지구가 젊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넌센스라고 알려주는 건 교육입니다.

젊은지구론 논쟁을 피하고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은 황당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평화롭게 대화하라는 걸까요? 가령,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해 주는 것이 당연하고 바른 태도가 아닐까요? 젊은지구론의 잘못된 주장을 제대로 따져 주는 것이 과학자의 의무입니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이런 일을 안 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젊은지구론이 판을 치는 것입니다. 마크 놀이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달"에서 지적했던 지적도 정확히 이 맥락입니다.

3. 셋째, 양비론에 기대어 적절히 중간에 서는 입장은 지적으로 불성실합니다. 젊은지구론도 틀렸고 진화창조론도 틀렸으니 나는 오랜지구론 입장이다라는 것이죠. 심정적으로는 이 입장을 갖는 분들을 이해합니다. 젊은지구론은 대부분의 과학을 부정하니 아닌 것 같고 생물진화를 인정하기에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중간적 입장을 선택하는 것이죠. 더군다나 진화과학이 얼마나 엄밀한지를 파악할 전문성은 없는데다가 창조과학의 반진화 주장들만 일방적으로 들어와서 심각한 정보의 뷸균형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지구론이 쉬운 선택이겠지요.

그러나 지구연대나 우주기원를 다루는 과학이 옳은지 판단할 전문성이 현저히 부족하면서도 오랜지구는 받아들이는 반면, 생물진화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부족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모순적입니다. 이중잣대인 셈이죠. 지질학자나 천문학자의 설명은 받아들이는 반면, 생물학자의 설명은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충분한 공부와 검토를 통해 그렇게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분히 선입견 때문이고, 심리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는 지적으로 불성실한 태도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이 문제를 공부하고 결론내리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그분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잘 모르면서도 뭔가를 주장하는 경우죠. 균형잡히지 않은 작은 지식을 가지고 마치 전세계의 과학자들과 맞짱을 뜨는 분들은 매우 용감한 분들입니다. 약은 약사에게 병은 의사에게 라는 말처럼, 과학은 과학자에게 신학은 신학자에게 배우려는 태도가 바로 바른 태도이며 대화를 이끄는 태도입니다.

4. 넷째로, 젊은지구론 비판을 진화창조론과의 대결구도로 보는 시각입니다. 하나님이 진화를 통해서 창조하셨다고 보는 진화창조론과 하나님은 우주와 지구를 만년 전에 창조하셨다고 보는 젊은지구론 중에 어느 것이 더 복음의 진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까요? 진화를 무신론적으로 해석하는 진화주의에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젊은지구론의 피해도 매우 심각합니다. 교회에서는 젊은지구론을 배우고 학교에서는 오랜 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 교회에서 거짓말을 했다며 교회를 떠나고 신앙을 버리는 학생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들이 신앙을 잃는 것이 진화론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젊은지구론 때문이죠.

오랜지구론이나 지적설계론 지지자들은 젊은지구론의 폐해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진화창조론은 목소리 높여 비판하면서 젊은지구론은 왜 비판하지 않습니까? 젊은지구론이 틀렸다는 것은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왜 젊은지구론의 심각한 피해들을 직시하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엔 이분들은 젊은지구론 문제의 심각성에 관심이 없거나 왜면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젊은지구론을 비판하면서 생물진화를 옹호하는 얘기는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도, 젊은지구론 비판을 진화론으로 왜곡하여 색깔논쟁의 구도로 몰아가는 건 참 아쉽습니다. 지구나이가 1만년인가 와 생물은 진화했는가는 과학으로 보면 학문의 영역이 다른 두 가지 다른 이슈입니다.

젊은지구론을 반대하는 이유는 진화창조를 받아들이건 않건 간에 상관없이 젊은지구론이 과학적으로 넌센스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