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무크따 이야기] 7번째 - 신존재 증명을 무신론에 떠 넘겼다고?

별아저씨의집 2016. 6. 4. 10:28

#‎무크따_이야기‬ 7번째

신존재 증명을 무신론에 떠 넘겼다고? 


"박기자: 그러니까 무신론도 유신론처럼 하나의 믿음이라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그건 조금 지나친 비약 아닌가요? 믿음은 신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데, '안 믿는 사람들도 신이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 말장난처럼 들립니다. 산신령을 믿는 시골 사림이 있다고 해서 산신령의 존재조차 모르는 서울 사람이 '산신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 좀 무리 아닙니까? 그래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믿는 종교 운동도 생겨난 것이겠죠." (무신론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 65페이지에서 인용)


무크따의 박기자의 주장은 버트란트 러셀을 인용한 셈입니다. 러셀은 지구와 화성 사이에 망원경으로 찾을 수도 없는 조그만 주전자 (tea-pot) 하나가 있다는 주장을 예로 듭니다. 그 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증명할 책임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취지입니다. 과학으로 반증불가능한 주전자의 존재를 입증할 책임은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지, 주전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흔히, 신의 존재를 증명하라는 요구에 대해, 그럼 신이 없다는 걸 증명하라고 논지를 펼치면, 반론으로 제기하는 것이 바로 러셀의 주전자입니다. 신존재 증명은 신을 믿는 사람들의 책임이니까 무신론자들에게 떠넘기지 말라는 거죠.


그럴까요? 러셀의 주전자는 그럴듯 합니다. 별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주전자가 있다고 주장하려면 당연히 입증의 책임이 따르겠습니다. 주전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떠넘길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지구-화성 사이의 주전자와 신은 커다란 차이점을 갖습니다. 그런 주전자가 존재한다는 엉뚱한 주장엔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테니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입증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반대로 어찌된 연유에서건 지구-화성 사이에 주전자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다면 어떨까요? 그런 사회에서 거꾸로 누군가가 지구-화성 사이에 주전자가 '없다고' 주장하면 어떨까요? 아마도 사람들은 주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명의 책임은 그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지구-화성 사이에 그런 주전자가 없다는 걸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주전자를 주장하면 입증의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신의 존재는 주전자의 존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진리는 다수결이라는 주장을 펼친다고 오독하는 분들이 꼭 있군요)


일반적인 상식 혹은 믿음과 배치되는 내용을 누군가 주장한다면 입증의 책임이 그에게 있겠지만, 신 존재처럼 많은 사람들이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하는 상황이라면 입증의 책임이 일방적으로 신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신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의 주장이 엉뚱하게 들리고 신의 부재를 입증할 책임이 무신론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상식이 뭔가를 입증해 준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지구-화성 사이의 주전자라는 예 자체가 비상식적인 예라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이런 얘기하면 꼭 다수결 이야기나 상식이 꼭 옳은 얘기는 아니라는 초점에서 빗나간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러셀은 엉뚱한 주전자를 예로 들어서 존재 증명의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주전자를 믿는 수준의 엉뚱한 믿음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주전자의 존재를 과학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러셀은 명쾌하게 유신론적 신앙을 공격한 듯 하지만 사실 허수아비 공격같습니다.


신의 존재는 과학으로 직접 검출할 수 없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허황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그렇고 과학자들 중에도 무신론자와 불가진론자, 그리고 유신론자들이 공존합니다. 


과학으로 판단할 수 없다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도 엉뚱해 보입니다. 지구-화성 사이에 주전자가 있다고 믿는 것이나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나 둘다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지구-화성 사이에 주전자가 있다고 믿는 것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나 둘다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 존재 증명의 책임을 무신론자들에게 떠 넘기지 말라는 논지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신존재 증명은 무신론자들에게 떠 넘긴 것이 아니며, 신의 존재와 부재는 동일한 수준의 믿음으로 보입니다. 


(존재증명은 있다고 보는 사람들에게 입증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가령, 인류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도덕적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 입증의 책임이 있는걸까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입증의 책임이 없을까요?) 


과학으로 결론을 내릴 수도 없다면 뭔가 다른 입증이 필요해 보입니다. 신이 없다는 믿음에는 어떤 기초가 있을까요? 어차피 지구-화성 사이의 주전자의 존재처럼 과학으로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도대체 어떤 근거에 의해서 신이 없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걸까요? 


기독교의 믿음은 신의 계시로서 주어진 성경과, 수많은 순교자들을 낸 2000년의 교회사,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가 경험하는 하나님, 그리고 내 삶에 동행하는 신에 대한 개인적 경험에 기초합니다. 이런 증거들은 과학적 증명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성을 뛰어넘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학외적 증거들은 우리의 신앙의 합리적 토대가 되고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더욱 명확히 볼 수 있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