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오늘의 설교말씀

별아저씨의집 2015. 8. 2. 17:00

오늘 설교 말씀은 삭개오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만난 뒤에 자신이 불의하게 모은 재산을 포기하는 선언을 합니다. 재산의 반은 가난한 자둘에게 나누어주고, 불법하게 착취한 것은 4배를 갚겠다고 작정합니다. 

설교 후 질문시간에는 과연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고 채워줄 수 있을지, 나눔이 오갔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질문을 했습니다. 

삭개오의 예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원칙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은 삭개오 만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다들 개개인이 일정한 선을 두고 헌금도 하고 남을 돕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개인들에게만 맡겨두기보다는 뭔가 공동체적인 제안과 실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십일조 헌금을 하듯, 일정한 비율을 사회적 약자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따로 떼어 놓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물론 여기저기 후원도 합니다. 하지만 뭔가 사회적 약자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을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교회 같은 공동체 내애서, 혹은 우리동네에서, 혹은 함께하는 직장이나 모임 등의 공동체에서, 정말 급하게 경제적인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대부업체를 찾아가거나 자살하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품앗이 같은 구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고아로 자란 분들, 친척이나 친지가 없는 분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정말 손을 벌릴데가 없는 것이죠. 가끔씩 온라인으로 접하는 이런 분들의 안타까운 상황들은 참 무겁습니다. 

교회에 십일조 헌금만을 하는 것만이 중요하고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재정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면 교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오히려 헌금을 덜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겠습니다. 

교회에 헌금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라는 공식은 이제 우리사회에서는 더이상 쉽게 받아들일 만한 진리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헌금하면, 상당 부분 내가 그만큼의 유익을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재정의 대부분이 교회를 운영하는데 쓰이니까요. 

예수는 지극히 작은 자 한 명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내어 놓는 재물이 나의 유익과 관련없이 남을 위해 쓰여야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헌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얼마가 좋을까요? 삭개오처럼 재산의 반을 내놓지는 못하겠고, 별로 재산도 없고... 갑자기 10%는 어려울 수도 있으니 매달 1%를 떼서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주변에서 도움이 절실한 분들을 위해 적립해 두고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하던 헌금이나 후원을 줄이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내 자신의 미래와 위험상황을 대비해 보험금도 내는데, 다른 사람의 필요를 생각해서 1% 정도 더 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1%만 떼서 적립을 한다면 때때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작게나마 귀하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요. 

말로만 평안히 가라고 하고 몸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는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을 질책하는 야고보서의 말씀이 자꾸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