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 교수의 별아저씨 이야기]
국민일보 2015. 6. 20
과학과 교회교육
과학을 전공한 청년이 대학시절 경험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그 과에는 기독교인 교수들이 많은 편이었다는데, 수업시간에 신앙적인 내용을 많이 다루어서 학생들의 불만이 컸다고 한다. 반면 수업내용은 충실하지 못해서 오히려 종교에 반감을 갖게 된 학생들도 생겼단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전공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기독교를 전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과학을 잘 가르침으로써 오히려 더 창조주를 드러낼 수는 없었을까?
교회에 잘 나가던 아이가 갑자기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깜짝 놀란 부모가 이유를 묻자, 교회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란다. 공룡과 사람이 함께 살았고 지구나이는 만 년이라고 교회에서 배웠는데, 학교에 가서 과학시간에 공룡은 수천만년 전에 멸종했고 지구는 매우 오래되었음을 배우고는 갈등이 생겼단다. 교회 아니면 학교가 거짓말을 한 셈인데, 아이는 교회에 화살을 돌렸다. 이 일화를 듣고는 남일 같지 않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부모들이 꽤 있다.
교회가 아니라 학교가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한 아이라면 어떨까?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기독교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거나,시험답안은 과학과목에서 배운대로 쓰고 속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받을지도 모른다. 과학전공을 피해서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겠다.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이 두가지 예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있다. 과학시간에는 과학을 잘 가르치고 교회에서는 신앙을 잘 가르쳐야 한다. 축구하러 온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거나, 농구배우는 시간에 축구를 가르치면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축구선수에게는 농구를 가르치면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할 수 있겠지만, 우선 맡은 내용을 충실히 교육해야 한다.
과학과 종교는 다른 차원의 지식을 다루지만 무관하지는 않다. 기독교는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이 다루는 자연의 역사는 바로 창조의 역사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는 과학과 신앙이 원칙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와 과학의 충돌은 흔히 두가지 극단적인 견해로 비롯된다. 첫째는 과학의 범주를 넘어선 철학적 견해를 마치 과학처럼 선전하는 극단적 과학주의다. 여기에는 과학이 무신론의 증거라는 주장이나,과학으로 신의 창조가 증명된다는 식의 주장이 다 포함된다. 결국 과학 아니면 종교를 양자택일해야한다고 보는 견해다. 하지만 과학이 모든 철학적 신학적 질문까지 답을 할 수는 없다.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로서 딱 그만큼의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두번째는 극단적 성경해석을 바탕으로 과학을 인정하지 않는창조과학 부류의 근본주의다. 하지만 성경 창조기사의 초점은 창조주에 있으며, 창조의 순서나 기간과 같은 창조의 “방법”에 대해서 알리려는 의도를 담지 않았다는 것이 성서신학자들의 일관된 견해다. 즉, 성경본문으로 과학을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교회 주일학교에서는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한 창조론 (창조의 방법)을 고집하다가 오히려 창조주를 제한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신의 창조역사는 더 면면히 드러날 것이다. 창조의 과정과 방법은 과학을 통해 배우고, 주일학교에서는 창조주가 누구인지를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