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Durham 에서

별아저씨의집 2014. 8. 12. 21:06



살포시 비가 내리는 창밖 너머에는 천년의 고풍을 자랑하는 더람 성과 성당이 말없이 자리하고 있다. 한 주 내내 날씨가 맑은 편이더니 학회가 끝나는 주말부터는 비가 내린다. 익숙한 날씨 인듯 아랑곳않는 사람들은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탄다. 


더람 성을 휘도는 작은 강 위에 현대적 모습의 작은 다리가 산뜻하게 걸쳐있다. 캠퍼스를 오가며 매일 건넌 다리지만 오늘따라 더람 성을 배경으로 현대의 역사가 겹쳐지는 듯 하다. 

스코틀랜드의 침략을 맞아 잉글랜드 북방의 중요한 요새였던 더람이 큰 확장없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근대의 광산개발에도 불구하고 성과 성당을 두르는 더람의 중심부는 강으로 둘러싸인 크기 때문인지 옛모습을 담고 있다. 

천년의 역사 동안 사람들의 삶은 변했을까? 

북쪽의 침략을 막아 농민들을 보호했던 영주, 프린스비숍은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고 한다. 세금을 거두고 다리와 길에서 통행료를 받았다. 종교와 정치, 그리고 재판권을 포함한 막강한 권력이었고 더람은 마치 독립국가 같았다고 한다. 고달픈 하루를 살았던 농민들은 물론 정치/군사력을 가지고 자신들을 보호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지만 막강한 권력의 힘 아래서 시달리며 때론 파괴되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삶은 얼마나 많이 다를까? 

정치와 사회를 아는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들은, 그리고 날 때부터 좋은 집안에 태어난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을 통치한다. 그 거대한 구조 안에서 사람들은 모든 답이 권력과 부에 있다는 듯, 끊임없이 고지를 향한 경쟁에 휘둘린다. 삶이 파괴되는 이유는 권력을 가진자들에게 희생을 당해서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권력을 향해 질주하면서 중요한 삶의 가치들을 잃어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주 간, 학회를 하며 사람들을 본다. 어찌보면 잘난 사람들의 대열에 끼려는 잘난 척하기 대회처럼 보이기도 하는 학회. 누군가는 조명을 받으며 자신의 결과를 거푸 드러내고 누군가는 그 기회를 얻지 못해, 아예 이 학회에 오기를 포기한다. 물론 좋은 결과들에 대한 판단과 선별과정이 있지만, 학계에 흐르는 또다른 흐름은 권력에의 질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다르지 않았다. 인정받으려는 바둥댐은 무척이나 달갑지 않다. 삶에 대한 조망이 조금 바뀌었을까? 혹은 나이가 들어가면 에너지를 잃는 것일까? 아니면 긴 바둥거림에 지쳤음일까? 앞에서 허튼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이 있어도 그려려니 한다. 십년 이상 먹었던 미국물을 벗는 것일까? 말이 없어진다. 나는 조용히 연구를 하고 그리고 삶을 생각하고 싶다. 

비가 그치고 날이 개고 있다. 나는 다음을 향해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