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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영화평- 우주를 보는 눈, 허블 우주망원경을 구하라 (허블3D 아이맥스 영화)

별아저씨의집 2012. 5. 29. 20:00

아이맥스 영화로 개봉되었던 '허블3D'의 영화평입니다. 작년에 과학동아로부터 청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6월호인가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록을 위해 남겨둡니다.







우주를 보는 눈, 허블우주망원경을 구하라 -허블 3D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자그마한 깨알 같은 은하들이 가득 스크린을 메운다. 폭탄의 파편처럼 퍼져나가는 은하들이 점점 관객에게 밀려오더니 손에 잡힐 듯 눈가에 와 닿는다. 영화의 시작 장면에서 부터 아이맥스 화면의 크기와 3D영화의 입체감에 압도되어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파편처럼 퍼지던 수많은 점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수천억 개의 별을 비롯해 수많은 행성과 블랙홀, 가스와 먼지를 지닌 거대한 소우주, 그러니까 은하라는 사실을 관객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가 목격하지 못했던 우주의 구석구석을 탐사하며 다양한 우주의 얼굴을 세세히 보여준 허블망원경의 영상들이 하이라이트되는 동안 드디어 관객들은 실감한다. 광대한 우주 구조 안에 담긴 그 깨알같던 은하들의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영화를 함께 본 아내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매우 짧은 영화평을 던졌다. ‘와우!’

 

미항공우주국(NASA)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로 꼽히는 허블우주망원경을 소재로 한 영화, 허블 3D가 한국에서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허블망원경의 일대기와 함께 허블이 밝힌 우주의 비밀을 소개하는 다큐멘타리 영화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가슴벅차다. 20095 11,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 호에 몸을 실은7명의 우주비행사들이 맡은 임무는 바로 허블우주망원경을 구하는 일이었다.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고 기기를 교체하는 임무, 서비스 미션 4라 불리는 이 작전을 생생하게 담아낸 영화를 보며 내 심장은 다시 한번 벅차게 뛰기 시작한다. 5년이나 연기되고 결국 취소되었던 서비스 미션을 통해 죽어가던 허블망원경은 부활한다. 그리고 이제 예전보다 더 밝아진 눈으로  우주를 탐사한다.

 

2003 2 1,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오던 우주왕복선 콜럼비아 호가 지구대기권에 진입하다가 불행하게도 폭발하고 만다. 7명의 승무원은 모두 목숨을 잃었고 우주왕복선의 잔해가 대서양 위로 흩어졌다. 이 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미항공우주국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의  안전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이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아마도 허블우주망원경이 아닐까?  허블망원경은 우주비행사들이 직접 우주로 날아가 수리하고 관측기기들을 교체해 주어야 하는 우주망원경이다. 콜럼비아호의 사고로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중단되면서 허블의 운명도 바람 앞의 촛불이 되어버렸다.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한 서비스 미션은 원래 2004년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주왕복선이 폭발하거나 고장날 가능성 때문에 서비스 미션은 몇번이나  연기되다가 결국은 취소되고 말았다. 그것은 허블망원경이 고장난 몸을 지탱하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켈리포니아 대학에서 거대블랙홀을 연구하고 있었던 내게도 허블망원경은 매우 중요했다. 엄청난 에너지를 내는 거대블랙홀이 살고 있는 희미한 은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망원경이 바로 허블우주망원경이기 때문이었다. 2007년에 ACS (Advanced Camera for Surveys) 라고 불리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던 카메라를 사용하여 블랙홀과 은하의 관계를 연구하던 우리 팀에게 ACS카메라가 고장났다는 소식은 재앙과도 같았다. 서비스 미션이 없다면 여러 관측기기들이 이미 고장난 허블망원경은  점점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로 변해갈 수 밖에 없었다.

 

우주비행사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허블의 서비스 미션 계획을 취소했다가 수많은 반대에 부딪힌 당시 미항공우주국의 국장. 그리고 취소된 서비스 미션을 다시금 재개하도록 큰 힘을 실어준 메릴랜드 주의 상원의원이 영화에서 살며시 대비된다. 허블망원경의 과학적 유산을 기억하는 수많은 시민들과 과학자들은 허블망원경을 살려야 한다고 요구하였고 결국 그 드센 요청은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5년이나 미루어졌던 서비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2009 5 11, 드디어  7명의 우주비행사가 지구를 떠난다.

 

영화는 10여년 간의 준비 끝에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 호에 실려 허블우주망원경이 발사되는 장면으로 부터 허블의 일대기를 시작한다. 1990년의 일이다. 버스만한 크기의 허블우주망원경을 실은 우주왕복선이 엄청난 크기의 로케트에 실려 굉음을 내면서 발사되는 장면은 언제봐도 웅장하다. 지구의 중력을 이기기 위해 엄청난 추진력을 내며 위로 솟구치는 로케트와 우주왕복선의 모습은 우주탐험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담고있듯 정열적이고 화끈하다. 허블망원경의 제작은 1985년에 끝났지만 허블망원경은 5년 동안이나 우주로 나갈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역시 1986년에 있었던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의 폭발사고 때문이었다. 그때도 우주왕복선의 위험성이 큰 이슈가 되었고 허블망원경을 쏘아보내기 위한 계획은 길게 연기되었다. 그러고보면 허블망원경은 탄생의 순간부터 험난한 도전을 겪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왜 망원경을 우주로 쏘아보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지구의 대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는 별빛이 지구대기를 통과하면서 찌그러지는 현상을 피할 수 없는 반면, 우주공간에서는 비교할 수 없이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일단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든다. 1990년에 발사될 당시 허블망원경에 들어간 비용은 15억불이라고 알려져있다. 또 하나의 단점은  수리를 하거나, 오래된 카메라 등을 새로운 관측기기로 교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일단 우주로 쏘아올린 뒤에는 누군가가 우주공간으로 나가서 허블우주망원경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허블의 서비스 미션은 바로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고 새로운 카메라들을 부착하기 위한 어렵고 도전적인 미션이었던 것이다.  1990년에 허블망원경이 처음 우주 공간에 올려졌을 때 과학자들은 허블이 탁월한 이미지들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첫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그것은 한 렌즈의 결함으로 망원경의 촛점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번째 서비스 미션이 1993년에 수행된다.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왕복선을 타고 우주공간에 나가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장면이 전세계에 방영되었다. 그 후로 두 번 더 서비스 미션이 수행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이 될 네번 째 서비스 미션이 2009 5월에 시작된 것이다.

 

허블망원경을 수리하는 11일의 기간이 하루하루 지나간다.  7명의 우주비행사들은 빡빡한 스케쥴에 따라 목숨을 건 작업을 진행한다. 작은 실수가 자신을 우주 미아로 만들 수도 있고 허블우주망원경을 고철덩어리로  만들 수도 있다. 이 중요한 임무에 직접 관련된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허블망원경을 사용해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도 그 열하루는 손에 땀을 쥐는 기간이었다. 전날에 있었던 우주비행사들의 활동이 매일 아침 뉴스가 되었다. 광시야 카메라가 드디어 장착되었다거나, 나사 하나가 안 풀려서 고장난 기기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거나, 노련한 선임 우주비행사가 나사를 부러뜨리고 기기를 탈착했다거나 하는 등등의 이메일이 오갔다. 점심식탁에서는 허블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기대와 염려가 섞인 대화가 이어졌었다. 허블의 서비스 미션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간절했다. 더군다나 그동안 발전된 첨단기술을 사용해 새롭게 개발된 관측기기들을 장착하게 되면 허블의 눈은 몇 배나 더 밝아지고 새로운 과학연구가 가능하게 될 것이었으니 누군들 서비스 미션의 성공을 바라지 않았겠는가?  우주공간에서 수행된 11일의 서비스 미션  4는 다행히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밤하늘을 항해하던 허블우주망원경의 눈은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 별 위에 펼쳐진 오리온 자리로 향한다. 화면에는 오리온자리가 점점 확대된다. 오리온자리가 가까와지자 오리온 대성운과 말머리 성운이 정체를 드러낸다. 마치 우주선을 타고 가듯 스크린 안으로 빨려들어가다 보면 창조의 기둥이라 불리는 별탄생 지역에 도달한다. 허블우주망원경이 밝힌 많은 우주의 비밀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이 바로 여기 창조의 기둥이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막 태어난 별들이 마치 올챙이처럼 생명의 둥지 안에 고요히 담겨있다. 주변에 있는 밝은 별에서 나오는 별바람 때문에 막 태어난 별들을 둘러싸고 있는 기체들은 한 방향으로 꼬리를 만들며 마치 올챙이와 비슷한 모양을 형성한다. 지구와 오리온 성운 사이의 거리인 1500광년을 단숨에 날아간 듯 허블망원경은 숨겨졌던 별탄생의 비밀을 화련한 영상들로 우리 눈 앞에 펼쳐놓는다. 신비로운 우주의 역사를 주문으로 외우듯 새롭게 탄생하는 별들의 고요한 출렁거림 앞에 관객들은 경건한 찬사를 보낸다. 이 뿐인가? 충돌하는 두 은하는 총 천연색으로 조각같은 모습을 담고 있고, 거대블랙홀이 뿜어내는 제트는 아득한 빛의 방출같다. 허블우주망원경이 담아 낸 우주의 모습을 결코 글로 다 담아낼 수는  없다.  영화가 담은 우주의 화려한 영상들은 그저 우리를 침묵하게 한다.

 

다큐멘타리 영화의 인기는 그저 그렇다.  2010년에 미국에서 처음 개봉된 이 영화는 분명 성인들을 관객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영화관에는 주로 아이들과 부모가 주 관객을 이루었다. 영화상영에 앞선 예고편 마저 아이들을 위한 에니메이션 영화다. 마케팅 조사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었겠지만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우주비행사들의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미항공우주국이 서비스 미션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던 것은 결국 허블우주망원경을 살리기 원했던 미국과 세계 시민들의 열망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열망이 화려한 영상으로 담긴 영화, 허블3D는 결국 그 가치를 아는 자들에게만 소비되며 선택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켈리포니아 대학 산타바바라와 UCLA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NASA가 수여하는 허블 펠로우쉽을 수상했다. 거대블랙홀과 은하진화를 연구하는  우종학 교수는 대중과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블랙홀 교향곡 (동녘)’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