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과학칼럼 & 과학에세이

[사이언스 플라자] 대중이 과학을 누리게 하라

별아저씨의집 2012. 3. 13. 23:27
2012. 3. 14일짜 칼럼입니다. 내용을 나눠쓰긴 그렇고 묶어쓰려니 구체적 얘기를 많이 할 수 없고, 뭐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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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과학을 누리게 하라.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한 나라 과학 수준은 연구인력이나 예산, 논문, 과학교육 등 다양한 지표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간과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국민의 과학 수준이다. 

북미나 유럽 국가 국민은 과학에 대한 소비 욕구가 높다. 과학전시관에 가보면 자녀들 보호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과학관을 찾는 어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과학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가, 그들이 가진 과학상식이나 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에 깜짝 놀란 적이 많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꾸준히 과학을 접하고 누리는 그들 모습에서 과학 선진국의 숨겨진 밑거름을 보게 된다. 과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사랑은 과학이라는 나무를 자라게 하는 토양이다. 

두뇌가 좋고 산수를 잘하는 우리 국민의 과학 수준은 어떨까? 문학과 예술처럼 과학을 즐기고 소비하는 사람, 과학이 취미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과학이 과학자들 전유물이어서는 과학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 세금을 내는 국민이 과학의 맛을 누리고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채울 수 있어야 막대한 예산을 쓰는 국가의 과학정책도 설득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 

대중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두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성인을 위한 과학 콘텐츠가 없다는 점이다. 대학생과 함께 과학전시관을 방문하면 많이들 실망한다. 대부분 전시물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대중 과학서를 봐도 그렇다. 다른 분야에 비해 도서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외국 도서 번역물이 주종을 이룬다. 중ㆍ고생만 되어도 대중 과학서 독자층은 과학자를 꿈꾸는 몇몇 아이들로 한정되어 버린다. 

과학문화라는 말이 유행이다. 과학을 가지고 대중에게 다가가는 노력은 고무적이지만 그 대상이 주로 초ㆍ중ㆍ고 학생들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을까? 성인들이 과학을 접할 기회, 어른을 위한 과학 콘텐츠는 많지 않다.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해 과학정보가 다채로워지고 접근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어른들을 위한 과학 콘텐츠는 여전히 부족하다. 소비할 과학 콘텐츠가 없어서 과학에 관심이 없어지는 것인지, 소비층이 없어서 과학 콘텐츠가 생산되지 않는 것인지를 따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학교 졸업과 동시에 과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 대한 지적 욕구는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쉽게 과학을 접하고 누릴 수 있도록 과학 대중화를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둘째, 과학 대중화를 책임질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 기사 번역물이 과학뉴스 중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내용을 이해하고 쓴 것인지 의문이 드는 오류 투성이인 과학기사도 부끄럽다. 주요 신문사나 방송국에서 전문적으로 과학을 다루는 과학 전문기자는 손에 꼽힐 만큼 적다. 분야별로 박사학위를 가진 과학기자들이 포진하고 있는 세계적인 대중매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과학저널리즘에 대한 이해와 투자가 절실하다. 

딱딱한 과학을 대중에게 던져주면 아무도 먹지 않는다. 대중 입맛에 맞으면서도 동시에 영양이 풍부한 좋은 먹을거리로 과학을 요리하는 작업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과학을 쉽게 풀어내고 다양한 문화 형태로 제공하는 과학 대중화 작업을 과학자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과학 전공자들을 과학 언론인, 작가, 과학문화가로 키우는 장기적 안목과 정책이 필요하다. 대중 과학 분야 종사자들이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과학자들도 소통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대중에게 다가서야 한다. 

과학 세계는 경이롭다.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봄직하고 먹음직한 과학 콘텐츠로 제공하여 누구나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학을 소수의 전유물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