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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하는 맛.

별아저씨의집 2009. 4. 22. 14:00
거의 1년 가까이 끌어오던 논문이 드디어 출판되게 되었다. 

이 논문에 대해 나름대로 몇가지 의미부여를 해 볼수 있겠는데 그 중 제일 힘들었지만 통쾌했던 것은 레프리(심사위원)를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최근 몇년간 저널에 내는 논문마다 혹평이 가득 담긴 레프리의 첫 리포트가 돌아오곤 했다. 작년 여름엔가 제출한 이번 논문의 경우에도 오리지날한 내용이 없다고 출판불가하다는 혹평이 담긴 짧은 리포트가 돌아왔다. 물론 논문자체가 거부된 것은 아니어서 레프리와 논쟁할 기회는 갖게 되었다. 그러나 워낙 강한 어조의 일방적인 주장이었기에 동료들은 아예 이 저널을 포기하고 다른 저널에 다시 제출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건 받아들일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지 모르는 그 레프리는 결국 이 필드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일테고 그가 출판될수 없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다른 저널에 출판되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논문을 출판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논문 수를 늘이는 것이 승진에 도움이 되겠다. 그러나 논문의 내용이 과학자들에게 의미가 있고 그래서 다른 연구에 도움이 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 분야의 오피니어 리더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 덜렁 논문 출판만 한다고 해서 과학에 득 될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논문이 결국 리젝트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레프리를 설득하기로 했다. 물론 우리가 연구한 결과들이 옳다는 자신이 있었다. 학교를 옮기고 또 다른 프로젝트들 때문에 개정작업이 늦어졌지만 결국 레프리가 원하는 테스트들을 첨부하고 논문의 내용을 보강했다. 그리고 레프리가 지적한 점들 하나하나에 대해 동의할수 없는 것과 있는 것에 대해 이유를 밝히며 설득하는 편지를 썼다. 

두번째 날아온 레프리의 리포트는 상당히 다른 톤이었다. 주변적인 것 몇개만 고치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레프리 설득에 성공한 셈이었다. 물론 그동안 학회에 가서 톡을 하기도 했고 몇몇 사람들에게 주요 결과들을 알리기도 했다. 그런 작업은 결국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다시 고친 논문을 세번째로 제출하자 며칠 만에 출판이 확정되었다는 이메일이 날아왔다. 그렇게 또 한편의 논문이 완성되었다.

레프리와의 논쟁을 벌이는 과정은 무척 힘들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과학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다. 레프리나 저자나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고 주어진 과학적 증거들과 논리들을 통해 얼마든지 설득될 수도 있고 설득할 수 도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훌륭한 결과를 낳았어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거나 (그러니까 논문을 쓰지 않거나)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으면 (논문만 춢판하고 설득하고 방어하지 않으면) 결국 그 내용은 사장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설득과정이 어쩌면 과학활동의 하이라이트일수도 있다. 그렇게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과학의 매력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