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이슈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기

별아저씨의집 2020. 11. 7. 11:21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기.

내일 부천에 청년부 강의하러 갑니다. 오랜만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의한다니 마음에 기대가 있습니다.

지난 봄부터 연락을 주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 드디어 내일 모임을 갖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3-4시간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그런 강의는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과신대 기초과정을 들을 수 있으니, 그보다는 1-2시간 집중적인 강연이 낫겠다 싶어서 그렇게 진행합니다. 1시간 반 정도 강의와 30분 정도 질문 시간을 갖습니다.

장년들도 그렇지만 청년들을 만나는 일은 항상 기대감과 설레임이 있습니다. 평생 고민하던 고민이 해결되고 자유를 누리거나, 신앙의 걸림돌이 있다가 말끔히 해소되거나, 교회에 대한 갈등이 있다가 사라지거나, 신앙이 증명이 안되니 회의적이다가 믿음에 눈을 뜨는, 그런 일이 단 한 명에게 일어난다고 해도 제가 반나절도 안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은 매우 뜻깊은 일이 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어렵고, 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도 어렵지만, 한 사람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도 창조에 대한 관점과 신앙에 대한 시각이 평생 바뀌는 계기가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무엇보다 값진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적은 수의 청년부지만 혹시 책이 필요한 청년들이 있을지도 몰라서 책을 조금 가져갑니다. 올해는 신앙과 과학 강연을 할 기회가 무척 줄어서 출판사에 책을 주문한 횟수도 매우 줄었습니다.

IVP에서 무크따가 택배로 배달되었습니다. 아침에 박스를 열어 책 한권을 꺼내 들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얼마 전에 개정판 발행한 지 6년이 되었습니다.

초판은 2009년 4월에 발행되어 2012년에 4쇄를 찍었고, 5주년되어 책을 증보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내용을 보충하고 개정해서 2014년 가을에 2판을 찍었습니다. 개정증보판은 올해 3월까지 7쇄를 찍었네요. 매년 1쇄씩 찍은 셈입니다. 총 11쇄를 찍었으니, 이 책은 참 많은 사랑을 받았네요.

6년전 개정증보판이 발행되고 참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창조과학자들의 공격이 심했지요.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부활도 믿지 않는다, 타협한 그리스도인이다, 무신론자보다 더 나쁘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비판들을 받으며 1년 정도 참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페북에도 엄청난 질문들이 달리고 공격도 들어왔지요.

여전히 지구6천년설 창조과학이 온누리교회 같은 큰교회를 중심으로 퍼져있지만, 그래도 참 세월의 힘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한국사람들이 껌뻑 죽는 영미 신학자들도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입장이고 우주론과 진화생물학 등 과학을 수용한다는 것도 이제 상식처럼 널리 알려졌습니다. 신학자들을 포함한 국내 저자들의 책도 많이 저술되어서 왜곡되어 있던 지적 지형도는 이제 균형을 잡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청년들의 고민은 사실 창조과학류가 아닙니다. 그랜드캐년이 노아홍수로 만들어졌고 지구나이가 6천년이라는 주장, 진화생물학을 무시하는 주장은 과학이 제시하는 빅히스토리와 그내용에 익숙하게 과학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청년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과학이 밝힌 수많은 내용들 앞에서 어떻게 신앙인으로 남아 있을수 있는가? 과학과 신앙을 함께 갖는 것이 가능한가? 과학을 넘어 진리를 추구하는 지적 작업은 의미를 상실했는가? 과학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듯한 시대에 성경의 가르침은 어떻게 이해하고 신앙을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이 훨씬 더 중요하고 선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코로나로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워지니 어떻게 이런 문제들을 도와야 할지 제 고민도 자가격리된듯한 느낌입니다.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져 묻고 고민해야할 내용들은 창조-진화 논쟁 수준이 아니라 창조과학이 발목잡는 케케묵은 논쟁을 넘어 보다 현실적이고 오늘날 청년들이 느끼는 신앙이 과학과 부딪히는 문제들입니다. 무신론자들에 대한 신앙인, 그것도 과학자인 신앙인의 답변, 바로 그것 말입니다.

가을에 청소년용 책을 마무리하기로 했는데 그저 답보 상태입니다. 글이라는 것이 손가락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 필요한데, 이런 종류의 글은 저 자신의 고민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을 돕는 글이라 그들을 향한 마음과 섬김의 자세, 그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즉, 왜 나는 이런 일을 하는가, 이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라는 추동이 글을 써내는 법입니다.

지난 주 강릉에 다녀와서 마음에 파도가 일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내일 청년부 강연을 통해서 다시 한번 큰 파도가 몰아치기를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