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민하다/손가락 가는 대로

교회와 주일 예배 III

별아저씨의집 2020. 3. 22. 19:23

1. 코로나가 확산되는 시기에 지역교회가 자진해서 가정예배와 온라인예배로 전환하고 예배당 모임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건 누구나 동의할 만한 상식입니다.

2. 그렇지만 강제로 교회당을 폐쇄해서 주일예배를 못 드리게 행정명령을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종교 자유의 제한과 형평성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3. 오늘 국무총리가 행정 권고를 내렸습니다. 앞으로 2주간 학원, 주점, 까페를 비롯해서 종교시설도 모임을 하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강제명령은 아니지만 발열자 확인,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고 감염자가 생기면 구상권을 청구한다니, 권고라고 해도 명령에 가깝습니다.

4. 어제 어느 주점에서 10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강남 클럽들은 어제 불금에 맞춰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까페나 여러 대중 시설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5. 교회만 문닫게 하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형평성 문제가 있지만 이제는 종교시설 뿐만 아니라 상업 시설까지 권고를 내렸으니, 더이상 교회만 핍박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6. 지역교회들은 국가의 권고에 따라 교회당 오프라인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 예배나 가정예배로 전환해야 합니다.

7. 주일예배로 모이는 것은 공동체성을 위해서 중요하고 교회의 핵심인 코이노니아의 기본이 됩니다. 교회에서 모이지 않고서 공동체성과 코이노니아를 만들어 내기는 어렵습니다. 맞습니다.

8. 그러나 몇주 주일에 모이지 않는다고 공동체성이 흔들린다면 그동안 교회에서 부르짖은 공동체성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몇 주 모이지 못해서 교회가 코이노니아를 잃어버린다면 그동안 교회는 교회가 아니었던 겁니다. 계모임이나 동창회 등 이익집단과 달리 교회가 어떤 생명력을 가져왔길래 몇 주 안 모인다고 교회가 무너지는 지 오히려 돌아보고 반성해야 합니다.

9. 2주 정도 온라인 예배로 혹은 가정예배로 교회당에서 모일 수 없게 되던 시점에 많은 목회자들이 답답함을 호소하는 걸 보았습니다. 물론 그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앙이 얼마나 예배당 중심이었는지를 여지없이 드러내는게 아닐까 합니다.

10. 20년쯤 전에 미주 코스타 간사로 섬기면서 일년에 한번 모이는 유학생 수련회인 코스타 집회를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자신의 도시, 자신의 삶의 자리, 속한 학교에서 살아가는 삶이 훨씬 중요하고 거기서 복음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는게 중요한데, 코스타 집회는 일년에 한번 모이는 집회 자체가 우상화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코스타를 신병교육대에 비유했습니다.

11. 교회는 신병교육대와 같습니다. 생활공동체 혹은 경제공동체가 되지 않는 이상 현대인들은 일주일에 고작 한두번 예배당에서 모일 수 있을 뿐이고 일주일 삶의 대부분을 가정과 직장에서 보냅니다. 사실은 바로 그곳이 전투지 입니다.

12. 신병교육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전투지로 병사를 보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신병교육대만 부흥하고 전투지에는 병사가 없습니다. 가장 뛰어난 병사들은 신교대 조교로 남더라도 대부분은 전투지로 가야하는데 신교대만 커집니다. 신병이 모집되고 신병 훈련이 끝나도 신병교육대만 커집니다. 전투지는 여전히 열악합니다.

13. 신교대가 없으면 신병 교육도 할수 없고 전투지로 병사도 보낼수 없습니다. 신교대는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전투지로 병사를 보내지 않는 신교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14. 지역교회 매우 중요합니다. 지역교회는 신교대이면서 전방에서 싸우다 지친 병사들이 잠시 후방에서 와서 치료하고 쉬고 전투력을 회복해서 돌아가도록 돕는 후방입니다. 지역교회가 없다면 전방을 지킬 수 없습니다.

15. 그런데 많은 교인들은 예배당에서만 소위 신앙생활을 합니다. 가정과 직장, 삶의 자리에서는 별로 사역하지 않습니다. 별로 그렇게 성경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때맞춰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문화적으로 기독교인처럼 행동하면 그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까요? 그것이 로마서를 통해 가르쳐 주시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세상에 역행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영적 예배의 의미일까요?

16. 주일예배 설교는 많은 경우 교회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교인들끼리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에 촛점을 맞춘 경우가 많습니다. 신교대를 잘 유지하기 위한 훈화같습니다. 그러면 신병교육대는 사랑과 평화가 넘치고 잘 부흥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투지는요? 직장과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17. 한주 내내 직장에서 불의한 일로, 인간관계 문제를 성숙한 그리스도인답게 풀지 못한 고민으로, 자녀와의 대화단절 문제로, 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문제로 그렇게 씨름하고 뭔가해보려다 지쳐 메말라버린 교인들이 주일에 교회에 와서 쉴 수 있고 복음의 감격을 회복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세상을 거스리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믿음과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18 교회에서 찬양하며 너무 좋아서,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 집짓고 살겠다 해도 몇시간만 지나면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횡설수설한 베드로처럼 주일예배와 찬양이 너무나 좋다는 우리의 고백은 금새 칼을 들고 예수를 잡으러 온 겟세마네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답답한 호소로 바뀝니다.

19. 어떤 분들은 주일을 성수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예배한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생색 내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머지 한 주를 내맘대로 살도록 유예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도피적인 마음에 주일예배를 더 사모하는지도 모릅니다.

20. 교회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의 도를 따라 세상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같이 모여살고 생활수단을 공유하는 생활공동체나 경제공동체가 되어 함께 많은 시공간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물리적 공동체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21 한 주에 6일 동안이나 떨어져 있으면서도 공동체가 되려면 교회활동 중심의 교회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6일의 삶의 자리에서, 바로 그 전투지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믿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면 일주일에 한번 모여도 전방에서 잠시 쉬며 코이노이아를 나누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공동체라면 몇 주 주일에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파괴될 만한 그런 형편없는 공동체는 아닐 것입니다.

22.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믿음의 반석입니다. 그 교회가 성장하고 든든하게 서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고 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교회를 통해 세상에 나간 사람들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그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고 마침내 세상의 모두 하나님의 통치하심 아래 들어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고 구원하시려는 세상이 바로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