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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끝냈다. 1년 만에 돌아오는 차례였겠지만, 설교는 언제나 부담스럽다. 강의는 부담 전혀 없는데..^^
어제 에스겔 36장을 본문으로 준비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히브리서로 본문을 바꾸었다. 익숙하게 고민해 온 내용을 풀어내는 식으로 좀더 쉬운 길을 택했다. 어쨌거나 끝났다. ^^
일년에 몇차례씩 목회자가 아닌 사람들의 설교시간이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번 쯤은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단다.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교회가 직장이고 목회자들이 주로 교제권인 목회자들과 달리, 다양한 삶의 경험과 이슈를 끌어와서 말씀에 비추어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답하는 평신도의 설교는 공동체를 풍성하게 할테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교회당이 아니라 세상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니까.
몇주 전에 레이첼 에반스의 책을 받았다. 30살에 쓴 자전적 회고가 얼마나 깊이가 있겠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우 보수적인 교회 배경에서 자란 내 과거가 겹쳐져서 인지, 창조과학이나 기복신앙 같은 껍데기를 벗어나 성장해 가는 신앙의 여정에 공감되어서 인지, 나는 이 책을 마음으로 읽었다.
최근에 그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회자되었던 삶과 신앙의 여정이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만들며 내가 떠올랐다는 편집자의 멘트를 들으며 추천사를 쓰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 그렇게 다가왔다.
코로나로 잠재웠던 동력들이 쿵쾅거린다. 밖으로 나오겠다고, 다시 뻗어나가겠다고 가슴 벽에 부딪히며 탈출을 시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뻔하지만 그 일에 충실하는 것이 부르심이 아닐까 싶다.
경제 뉴스를 보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 정치 뉴스를 보느라 그랬던 몇년의 시절이 지나갔는데 이제는 또 다른 사라질 것들이 마음을 채간다. 썩어없어질 것들에 휘둘리고 곁눈질 하는 대신에,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을 추앙하고 삶을 신앙하는 길로 끝없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2주만 지나면 3월이다. 학교에서 새롭게 강의를 시작하고 학생들도 만난다. 과신대도 새로운 과정들이 시작된다.
서울남부 북클럽, 혹은 관악 북클럽이라 불렀던 모임을 3월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 두꺼운 [창조론자들]을 함께 읽자고 시작했던 그 모임은 오랫동안 더처지 교회의 세미나실을 빌려 책을 읽고 나누며 이어졌고 과신대의 핵심모임이 되었었다.
대표를 맡아 일이 많아져 소원해졌던 그 모임이 코로나 기간 동안 사그라들었다.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열정과 소망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대표가 무슨 소용인가. 행정업무는 결국 사람들을 위해서, 동역자들을 이어주는 기능일텐데 사람들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3월부터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더처치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든든한 동역자였지만 지방으로 옮겨가셨다. 새로 담임목사님이 오신 그 교회에 다시 연락을 해볼까? 혹은 다른 곳으로 인도해 주실까? 학교 근처가 좋을까? 집 근처가 좋을까? 그러고보니 북클럽과 기초과정 등 과신대 사역을 열심히 하겠다고 관악구청 근처에 집을 얻었던 기억이 퍼득 떠오른다. 앞으론 또 어떤 길이 열릴까.
레이첼 에반스의 [헤아려본 믿음]을 다시 시작할 북클럽의 첫 책으로 잡았다. 믿음을 헤아려 본다는 건 정말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까. C.S 루이스가 슬픔을 헤아려보았던 것처럼.
그런데 아무도 안 모이면 어쩌지? 그래 난 항상 믿음이 없다^ㅋ. 그래도 두세사람이라도 모이면 시작할테다. 3월의 어느 월요일부터 북클럽이 부활하겠다. 한달에 한번씩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