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학의 글과 칼럼
과학적 창조론 vs. 신학적 창조론
별아저씨의집
2019. 12. 25. 20:26
1. 창조과학에는 창조론이 없다. 구약학자인 전성민 (Sungmin Min Chun) 교수가 과신대 콜로퀴움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이 말은 여러 신학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지구 나이가 6천년이라고 주장하고 우주와 지구와 생명현상이 뚝딱 창조되었다는 마술사적 신관으로 창조를 보는 창조과학에 그 무슨 창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겠는가?
2. 신학자들과 다르게 대중은 '창조과학 = 창조론' 으로 알고있다. 진화론과 빅뱅우주론이 거짓임을 증명했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이 창조론이라고 오해한다. 그랜드캐년이 노아홍수 때 만들어졌고 6일창조와 지구나이 6천년이 과학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이 진정한 창조론이라고 오해한다.
3. 창조론(creationism)은 창조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창조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과학적 이해를 종합한 신앙고백적 혹은 형이상학적 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과학 = 창조론이라는 오해는 터무니없으며, 심오한 창조론의 깊이를 지구나이 6 천년 수준으로 끌어내린 심란한 오류다.
4. 며칠전 과신대 콜로퀴움에서 김정형 (Junghyung Kim) 교수는 창조설과 창조론을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책 [창조설을 넘어 창조론으로]도 같은 맥락이다. 흔히 창조과학과 동의어로 오해되는 creationism을 창조론 대신 창조설로 부르자는 의견이다. 대신 창조에 대한 교리 (the doctrine of creation)을 창조론으로 부르자고 한다.
5. 흔히 구별되는 3가지 창조론은 젊은지구 창조론, 오랜지구 (점진적) 창조론, 진화 창조론이다. 김정형 교수는 이 창조론들은 창조의 방법, 메카니즘, 시간적 순서 등 HOW라는 측면에 집중되어 있으며 창조의 목적과 주체, 의미 등 신학적인 면이 결여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창조에 대한 이런 과학적 이해를 창조설이라고 부르자고 한다. 지동설, 찬동설처럼 젊은지구 창조설, 오랜지구 창조설, 진화 창조설 등으로 말이다.
6. 그러나 진정한 창조론은 단지 창조가 얼마나 긴 시간동안 이루어졌나 혹은 인과적 혹은 진화적 방법이 사용되었는가 등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들을 종합한 창조의 교리를 창조론이라고 부르자는 김정형 교수의 말에 깊이 동의한다. 내 말로 표현하자면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창조론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이다.
7. 김정형 교수는 과학적 창조론 (창조론이 과학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창조론을 과학적인 면으로 즉 HOW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뜻. 즉, 젊은지구, 오랜지구, 진화)과 신학적 창조론은 체급이 다르다고 말한다. 과학적 창조론은 과거에 초점이 있고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다룬다면 신학적 창조론은 미래에 초점이 있고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다룬다. 창조의 역사와 구속사를 잇는, 가령 창조-타락-구속-새하늘과새땅의 관점도 함께 연결된다.
8. 한가지 고려할 점은 신학적 창조론도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창조 교리를 창조론이라고 부른다면 창조 교리에 들어가는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창조론도 다양할 수 있다. 가령 창조주를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폭군이나 가부장적인 창조주로 이해하는 창조론이 있을 수 있고, 자기를 제한하며 인간과 자연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창조세계와 협력하는 창조주로 이해하는 창조론이 있을 수 있다.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스펙트럼이 있고 그래서 신학적 창조론도 다양할 수 있다.
9. 창조에 대한 과학적 이해 (과학적 창조론)가 창조론의 전부인 듯 되어버린 한국교회에서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집중해야 한다는 김정형 교수의 말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그래서 창조설과 창조론을 나누자는 그의 말에도 어느정도 수긍이 된다.
10. 하지만 창조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 과학적 창조론은 신학적 창조론과 나누어질 수 없다. 창조설도 결국 창조론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11. 김정형 교수는 어느 창조설을 믿든 간에 같은 창조론을 공유할 수 있다는 면에 집중한다. 젊은 지구를 믿는, 진화적 창조를 믿든, 깊은 창조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것이 밝히기 전인 18, 19세기 이전 사람들은 모두 젊은 지구를 믿으며 훌륭한 창조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12. 그러나 중세시대가 아닌 과학시대에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을까?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과학적 사실이 명백해진 시대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강연 후 대담에서 나왔던 질문처럼 6천년 전에 지구를 뚝딱 만들었다고 믿는 사람과 46억년의 긴 과정을 거쳐 인과적으로 지구를 창조했다고 믿는 사람이 이해하는 창조는 같을 수 없다. 과학적 이해를 신학적 이해와 분리시켜서 어느 창조설을 믿는 같은 신학적 이해 혹은 신학적 창조론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13. 그 이유는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창조의 방법이나 how의 문제로 제한되거나 환원되지 않지만, 반대로 창조의 방법이나 how의 문제와 무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창조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바뀌고 풍성해지면서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도 더 풍성하고 깊어진다.
14. 물론 창조에 관해서 어떤 과학적 관점을 갖고 어떤 창조설을 믿건 간에 훌륭한 창조신앙을 가질수 있다. 젊은지구를 믿는 교인이 훌륭한 창조신앙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갖고 있는 창조주에 대한 이해, 신학적 관점이 오랜지구를 믿는 교인의 관점과 같을 수는 없다.
15. 창조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신학적 이해가 분리될 수 없는 더 중요한 이유는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결국 창조의 역사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담겨서 세워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신앙 혹은 신학적 이해는 구체적인 창조의 행위, 방법, 과정과 동떨어질 수 없다. 성경의 창조기사는 상징의 언어를 사용하고 고대근동의 상식과 그 시대의 세계관을 사용하여 고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창조를 묘사한다. 그점을 다 인정한다고 해도 과학시대의 교인들은 창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묻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6. 젊은지구, 오랜지구, 진화 창조론이 나온 이유도 그렇다. 김정형 교수가 옳게 지적하듯이 창조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이해할 것인가가 창조론의 전부가 되어버린 현실은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를 피할수는 없다. 현대과학이 제시하는 창조세계의 역사를 결국 교인들은 자신의 신앙과 연결시킬 수 밖에 없고 자신의 신학적 이해에 담을 수 밖에 없다. 창조의 방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은 나도 종종 이야기한다. 그러나 창조의 방법, how의 문제는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이 되고 있다.
17. 더 큰 문제는 한편으로는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사용해서 창조를 부정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과학자들이 창조를 믿는다며 과학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에서 중세시대 교인들처럼 젊은지구를 믿거나 진화적 창조를 믿거나 같은 창조론을 가질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긴 어렵다.
18. 창조론 creationism은 창조에 대한 신앙이자 그 신앙을 담는 커다란 그릇이다. 거기엔 창조 교리에 대한 고백을 포함하여 창조에 대한 성서적 이해와 자연세계에 대한 일반 계시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 포괄적 신학적 관점이 담긴다. 창조과학을 창조론이라고 생각하는 한계는 극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창조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창조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 되었다.
19. 김정형 교수는 창조설을 넘어 창조의 교리를 담는 진정한 창조론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현대과학을 품는 창조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학자가 과학을 품어야 한다는 말하는 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20.언젠가 강영안 Young Ahn Kang 교수가 했던 비판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우리는 창조론을 믿습니다'라고 쓰여진 어느 기독교대학의 문구를 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창조를 믿는 것이지 창조론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론은 여전히 하나의 관점, 우리 인간의 이해에 제한되는 내용일 수 있기 때문이다.
21 과학시대다. 과학과 신학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분리될 수는 없다. 창조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고백에서 출발하지만 창조를 과학적으로 깊이 이해하는 일은 창조신앙을 풍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신학적 이해도 폭넓게 한다. 종종 과학은 신학에는 도전이 될 수 있지만 창조신앙을 굳건히 붙들 때 창조론은 결국 바른 방향으로 나가며 풍성하게 될 것이다.
#과신대콜로퀴움
#김정형교수
#창조설을넘어창조론으로